밥 대신 빵. 우리는 지금 '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엔 빵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직접 빵집을 차리겠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빵집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어떤 빵집을 어떻게 차려야 할 지 궁금한 게 많다. 셰프만의 개성으로 '골리앗'을 넘어뜨린 전국 방방곳곳 '작은 빵집' 사장님들의 성공 방정식. [노정동의 빵집이야기]에서 그 성공 법칙을 소개한다.
베이커리에 들어갔더니 흔한 생크림 케이크 밖에 없어 실망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봐야 할 제과점이 있다. 서울 세검정삼거리에서 구기터널 방향으로 차로 5분만 올라가면 대로변에 심어져 있는 큰 플라타너스 나무 뒤에 하얀색 간판의 '프레이야'가 자리 잡고 있다. 생긴지 6개월 만에 케이크 매니아들을 열광시킨 것은 물론 10년차 이상의 파티셰들도 몰래 들려본다는 제과점이다.
몇 해 전 김윤정(사진·35) 파티셰는 영국에서 다니던 패션회사를 관두고 한국으로 들어와 상상만 하던 베이커리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원칙은 간단했다. 첫째, 매일 새로운 메뉴를 만들 것 둘째,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 것 셋째, 제철재료를 쓸 것.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은 단 하나, 대량 생산이었다.
그는 실제로 지난해 12월 프레이야의 문을 연 뒤로 하루에 단 2개의 케이크만을 만든다. 여기에 때에 따라 파운드 케이크와 제철재료로 만든 크럼블이 추가된다. 매일 직접 굽고 있는 식빵, 팥빵 정도만이 항상 구비돼 있는 메뉴지만 이마저도 5~6개다. 그는 애초부터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베이커리를 만들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아무도 만들지 않는 케이크를 만들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고 한다.
"마트에 가서 놓여 있는 재료들을 쭉 보다 보면 이걸로 케이크를 만들지 타르트를 만들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라요. 그런 재료들을 얼른 집어오죠. 최근에는 라즈베리와 체리, 초콜릿 등이 들어가 여름 더운 날씨에 먹기 좋은 타르트를 만들었더니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매일 똑같은 재료로 매일 똑같은 케이크를 만드는 건 제 스스로도 재미가 없어요."
프레이야 문을 연지 6개월 동안 그가 만든 케이크와 타르트 종류만 200여개에 달한다. 단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 김 파티셰는 본인이 만든 메뉴를 매일 오전 11시에 프레이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 매일 다른 메뉴를 판매하기 때문에 고객들은 이 SNS를 이용하거나 전화를 해야만 어떤 메뉴가 나왔는지 알 수 있다.
어떤 분야이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매일 말이다. 재료의 한계, 소재의 한계, 아이디어의 한계를 금방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까.
"내일은 어떤 케이크와 어떤 타르트를 만들지 생각하는 것이 저한테는 가장 기분 좋은 상상 중에 하나입니다.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내려면 본인 안에 데이터베이스가 많아야 해요. 그것이 식재료에 관한 것이든 케이크나 타르트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것이든지요. 제가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은 일 중에 하나가 전 세계에 있는 많은 베이커리와 케이크 전문점을 가본 거예요. 돈도 그 부분에 제일 많이 썼고요. 기존에 있는 식재료들을 가지고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프레이야의 특징 중 하나는 메뉴의 이름과 가격표가 없다는 점이다. 단호박과 고구마, 크림치즈가 들어간 크럼블을 만들었다면 이 메뉴의 이름은 '단호박 고구마 크림치즈 크럼블'이다. 쑥떡이 들어간 팥빵은 정성이 들어갔다고 해서 '엄마마음 단팥빵'이라고 소개한다. 모두 김 파티셰가 그때그때 붙인 이름들이다. 매일 새로운 메뉴를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밀가루 대신 제철재료가 가장 많이 포함된 제과들임을 알리고 싶어서다.
"메뉴에 이름과 가격표가 없으면 고객들이 이 타르트의 이름은 무엇인지, 저 파운드케이크의 이름은 무엇인지 물어보잖아요. 그러면 서로 한 마디라도 더 나눌 수 있는 거예요. 어떤 재료가 들어갔고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베이커리에 찾아오시는 고객들과 얘기하는 게 즐겁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자에게 접대한 '단호박 크림 치즈 파운드'가 맛있다고 하자 "내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라고 그는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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