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캠벨타운의 일자리 170개

입력 2016-06-27 17:43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 글래스고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곳에 캠벨타운이라는 곳이 있다.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가 다음달 7일 인구 5000여명의 이 조그만 도시로 출장을 간다. 스코틀랜드 주정부의 폴 휠하우스 에너지부장관도 합류한다. 한국 풍력타워업체인 씨에스윈드가 가동하고 있는 ‘CS WIND UK’의 출범을 축하해주기 위해서다. 씨에스윈드는 지난 3월 말 영국의 풍력타워기업 WTS(Wind Tower Scotland)를 단돈 1파운드에 인수해 계열로 편입했다. 영국 정부는 적자 국영기업을 공짜로 넘기면서 현금 80억원의 보조금도 지급했다. 어떻게든 기존 근로자 170명의 일자리를 지켜 달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헤이 대사의 영국 출장

한적한 시골 마을의 이 작은 인수합병(M&A)에 고위 공직자들이 총출동하는 장면은 무척 생경스럽다.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자녀 취업 청탁과 가족·친지들 밥그릇 챙기기로 물의를 빚고 있는 한국에선 특히 그렇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한다고 현지 대사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박수를 쳐주겠는가.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일자리는 한 국가의 정치·경제적 체제의 우열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논쟁의 처음과 끝도 일자리 문제였다. 영국 정부의 앤드리아 리드섬 에너지장관은 지난 21일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브렉시트 찬반 토론에서 “이민자 증가로 근로자들의 일자리와 임금이 모두 감소할 것”이라며 찬성론을 펼쳤다. 반대 진영에선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자본 이탈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2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맞섰다. 어떻게 보면 찬성 진영은 당장의 일자리, 반대 진영은 미래의 일자리를 걱정했을 뿐이다. 영국 경제는 이번 브렉시트 파장으로 고생을 좀 하겠지만 펀더멘털을 이탈하는 정도의 피해는 입지 않을 것이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기업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브렉시트, 反세계화 아니다

일각에서 브렉시트를 계기로 세계화의 균열, 다시 말해 반(反)세계화 진영이 득세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것은 섣부르다. 1993년 유럽연합(EU) 탄생으로 정점에 오른 지금의 세계화는 자본주의가 40여년간의 체제 경쟁에서 사회주의를 종식시킨 데 따른 산물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혁신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계화라는 파이프를 통해 각지에 실어 날랐다. “천재 한 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개인의 창발성은 시장경제와 글로벌 시장에서 비로소 개화됐다. 스티브 잡스가 그 증거다. 기존 질서에 약간의 흠집이 났다고 해서 새로운 파괴적인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것은 정치적 선동에 가깝다.

난민을 포함해 세계적 경기침체와 인구구조 변화가 야기하고 있는 이민자 문제는 국제 사회가 호혜?협력과 인도주의로 극복해 내야 할 문제다. 상품 서비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도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반세계화 진영이 일자리 창출에 대한 능력을 이론적으로, 실증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세계 시민들은 분열과 대립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를 퇴장시키고 일자리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추앙해야 할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조만간 정파와 이념을 떠나 한 외국 기업의 성공을 기원하며 캠벨타운에 모일 영국 사람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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