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한 이상 부양효과 나타나야
손놓고 있으면 미필적 고의 해당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중진국 함정, 조로화, 넛 크래커, 샌드위치 위기, 일본화, 잃어버린 10년….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2%대로 크게 후퇴했다. 일자리, 자본, 생산성이 동반 위축되는 ‘3퇴 현상’으로 지속 성장 가능성을 알 수 있는 잠재성장률도 3% 내외로 주저앉았다.
성장률 전망치와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요인이 복잡하다. 중국 경기둔화, 미국 금리인상 등의 대외 요인에다 구조조정 지연, 국회와 각종 단체의 이기주의 등 대내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변수를 통제변수와 행태변수로 나눌 때 통제가 가능하지 않은 행태변수가 많아 앞날을 더 어둡게 한다.
대외변수나 남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경제가 처한 여건이 그만큼 심각하다. 한국은행이 6월 금융통화회의에서 정책금리를 1년 만에 0.25%포인트 기습적으로 내린 직후 추가 금리인하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 국민이 바라는 ‘경제 살리기’에 통화정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렵게 내린 만큼 의도한 정책 효과를 거둬야 한다는 점이다. 구조조정 재원 마련 차원의 ‘부채 화폐화(debt monetization)’로 우려되는 한은의 독립성 훼손 방지를 위한 면피용 조치라면 이번 조치에 대한 비판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금리를 내린 이상 경기부양 효과를 거둬야 한다.
금리인하 효과를 거두기 위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이 추가로 금리를 내리는 일이다. 6월 금융통화회의에서 한꺼번에 두 단계, 0.5%포인트를 내렸어야 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7월 회의에서 한 차례 더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장 참여자 사이에도 추가 금리인하 방안에 대해 의외로 빨리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반대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가계부채가 과다한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더라도 더 이상 차입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야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논거다. 가계부채가 경제 현안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처분소득과 소비 간 상관관계를 추정해 보면 ‘0.9’ 이상 나와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금리인하 효과에 대한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 전달경로(정책금리인하→시장금리 하락→총수요 증대→성장률 제고)’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이때 통화정책 효과는 금리인하에 따른 총수요 증가, 즉 탄력도에 따라 결정된다. ‘탄력적’이면 크고(케인지언), ‘비탄력적’이면 적다(통화론자).
금리인하에 따른 총수요 탄력성은 경제발전 단계, 경제주체의 캐시플로(현금 흐름), 화폐 환상 등 다양한 요인으로 달라진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경제 발전이 미성숙 단계인 신흥국처럼 자금 수요 초과상태에서 화폐 환상까지 있으면 탄력적으로, 반대의 경우 비탄력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은 준선진국에 속한다.
이 때문에 통화정책 관할 대상에 어디까지 포함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그린스펀 독트린’처럼 실물경제만 고려한다면 우리도 금리인하에 따른 총수요 탄력도가 비탄력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특정국이 경제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그 정도는 심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버냉키 독트린’처럼 자산시장까지 포함하면 금리인하에 따른 총수요 직접증대 효과가 적더라도 주가와 부동산값 상승에 따른 ‘부(富)의 효과’로 총수요 간접증대 효과는 의외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임금소득에 비해 자산소득은 불로소득 성격이 짙어 동일한 소득이라도 쉽게 쓰기 때문이다.
온라인 급진전에 따른 네트워킹 효과로 통화정책에서 심리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시대에서 통화정책을 비롯한 모든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책수요층에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처럼 시중은행의 이기주의와 보신주의로 정책금리와 시장금리 간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은 국가에서는 정책금리를 내리면 예금금리보다 대출금리가 내려갈 수 있도록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도덕적 설득’을 구해 나가야 한다. 정책금리를 내리고 한은이 손 놓고 있 ?것은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
다른 통화정책 수단도 활용해야 한다. 우리보다 운신의 폭이 좁은 선진국은 한동안 쓰지 않았던 ‘지급준비율 수단’을 손질해 쓰고 있다. 다른 부처와도 공조 틀을 유지해야 한다. 6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전격 금리인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 등 불확실한 대외여건에 대한 대비는 금리인하 효과를 거두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