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최명배 엑시콘 회장 "주력 수출산업 어려운 지금, 10만 수출 강소기업 키워야"

입력 2016-06-12 18:24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 수상자 모임 한빛회 회장 된 최명배 엑시콘 회장

소재·부품산업 키워야 중국이 쫓아올 엄두 못 내
제조업 뒷받침 없인 바이오 등 신산업 미래 없어
IT 인프라 잘 활용하면 퀀텀점프 기회 잡을 것


[ 박영태 / 이지수 기자 ]
경기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반도체 장비업체 엑시콘 본사에는 수령이 100년은 족히 넘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최명배 엑시콘 회장(64)이 위례신도시 개발 당시 버려진 소나무를 옮겨와 심은 것이다. 수백년을 사는 소나무처럼 100년, 200년을 이어가는 글로벌 강소기업이 되겠다는 염원을 담았다.

30여년을 반도체업계에 몸담아온 최 회장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반도체 검사장비 국산화에 성공했다.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독식하던 반도체 장비를 수출해 2012년 ‘2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부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선정하는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 수상자 모임인 한빛회 신임 회장이 된 최 회장은 “우리 경제의 미래가 중소·중견기업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수출 1000만달러를 넘는 강소기업이 10만개만 나와도 우리 경제의 앞날이 탄탄해질 것”이라며 “정부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엑시콘 본사에서 최 회장을 만나 위기에 처한 한국 수출의 돌파구는 어디에있고 정부와 기업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우리 경제의 엔진인 수출이 17개월째 감소하고 있습니다. 수출 최일선에서 어려움이 많을 듯합니다.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전자 철강 조선 등 수출 주력 산업이 죽을 쑤고 있으니 막막하죠. 그렇지만 낙담할 일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도약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고 낙관합니다. 반도체 전자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아직 기회가 많다고 봅니다.”

▷낙관적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산업이 IT와 융합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경제가 퀀텀점프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한발 앞서가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IT분야도 중국의 추격이 거셉니다.

“한국무역협회 주선으로 지난해 중국 청두와 시안 등에 산업시찰을 다녀왔는데 적잖이 겁나더군요. 중국엔 인재가 널렸고 시장이 크고 자금이 넘쳐납니다. 그 틈바구니에 낀 한국이 과연 설자리가 있겠느냐는 회의가 들더군요. 문제는 어떤 길로 가느냐입니다. 뿌리산업 등 기초산업을 키워 중국이 당장 쫓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기업도 기업이지만 국가적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으면 기업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출 주역인 한빛회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한빛회는 수출 강소기업 대표들의 모임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죠. 앞으로 이런 수출 강소기업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은 한빛회 회원이 143명에 불과합니다만, 무역전선에서 뛰는 중소·중견기업이 10만개만 되면 1조3000억달러인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 2조달러, 3조달러로 늘어날 겁니다. 정부가 수출 전사들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것만큼 좋은 경제활성화 대책은 없다고 봅니다. 중소·중견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은 조선 철강 등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대기업들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IT 융합기술로 강소기업 키워야

▷한빛회를 어떻게 이끌 계획입니까.

“수출 강소기업들의 모임인 한빛회가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나갈 계획입니다. 수출 활성화를 위해 상호 협력하는 네트워크 구축 등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대책이 궁금합니다.

“다들 제조업은 한물갔다고 하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제조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미래 신산업을 키울 수 없습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바이오, 로봇, 우주산업의 기반 기술은 나노기술이에요. 나노기술 덕분에 유전자 분석이 쉬워진 거죠. 그 나노기술은 반도체에서 나온 겁니다. 화학 물리 재료 등 다방면의 기술이 응축된 반도체 기술을 잘 키우면 미래 신산업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반도체를 비롯한 소재나 曠?경쟁력을 탄탄하게 키우자는 겁니다. 그래야 중국 등 다른 후발주자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습니다.”

▷정부가 미래산업 육성에만 힘을 쏟는 듯합니다.

“정부가 요즘 바이오 등 신산업 육성에만 너무 매달리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지금이라도 소재·부품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정해 치밀하고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반도체업계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1980년대 초 삼성전자가 기흥반도체 1공장을 세울 때 장비를 구매하는 업무를 맡았어요. 그때 겪은 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미국 일본 등의 장비회사를 찾아가도 담당자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어요. 매일 찾아가 상주하다시피 해서 겨우 물건을 받곤 했습니다. 그때 장비 기술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강소기업 비결은 선택과 집중

▷창업 계기가 궁금합니다.

“임플란터(반도체 회로에 전기가 통하도록 이온을 주입하는 장치), 노광기(웨이퍼에 회로 도면을 입히는 장치), 메모리 테스터(불량품을 가려내는 검사장비) 등 반도체 핵심 장비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쌉니다. 30여년을 반도체업계에서 일하면서 늘 안타까웠던 게 바로 이런 핵심 장비를 일본과 미국 업체들이 독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05년 DC테스트 장비를 만들던 엑시콘을 인수해 메모리 검사장비 국산화에 뛰어들었습求? 30여명의 개발자가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한 끝에 1년여 만에 ‘EX8801’이라는 국산 메모리 검사장비를 개발해냈습니다.”

▷성공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성공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라고 봅니다. 외국 회사들은 여러 기능을 두루 갖춘 범용 검사장비를 제조해 비싸게 팔고 있었습니다. 반도체에 따라서는 필요 없는 기능도 있었죠. 엑시콘은 핵심 기능에 집중했습니다.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핵심 기능만 모아 하나의 칩으로 개발해냈습니다. 직접 설계하고 개발한 덕분에 성능도 뛰어났고 가격도 절반가량 낮출 수 있었죠. 글로벌 선두업체인 일본 어드반테스트, 미국 테라다인 등과 대등한 수준까지 따라잡았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입니까.

“기업 경쟁력은 결국 기술력으로 갈립니다. 빠르게 변하는 IT산업에선 기술개발 속도가 조금만 늦어져도 도태되고 맙니다. 판교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운 것은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본에도 도쿄와 하마마쓰 두 곳에 30여명의 베테랑 연구인력이 있습니다. 매년 연구개발비만 200억원 이상을 씁니다. 관계사인 DHK솔루션(반도체 정밀가공 장비업체), YIKC(웨이퍼 검사장비업체) 등을 포함하면 엑시콘 전체 직원이 450여명인데 70% 이상이 연구·기술 인력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기술력을 키워 일본 교세라나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같은 세계 최고 부품·소재 강소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최명배 회장은…

1980년대 초반부터 삼성물산 삼성전자 등에 근무하며 국내 반도체산업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2005년 엑시콘을 인수한 뒤 반도체 메모리 검사장비 개발에 뛰어들어 1년여 만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엑시콘을 비롯해 DHK솔루션 YIKC 디디아이아 등 반도체 관련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을 지내며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확대에도 힘을 보탰다. 대한민국 반도체 기술대상 국무총리상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952년 경북 영양 출생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삼성전자 상무 △한국산학기술학회 회장 △DHK솔루션 대표 △YIKC 대표 △무역협회 부회장 △경기도기업협의회장 △무역인력 양성위원회 위원장 △반도체의 날 대통령표창 △무역의 날 산업포장

■ 한빛회는…
수출 중소·중견기업인 모임
산업부·무역협회·한경 공동선정

수출형 중소·중견기업을 대표하는 한빛회는 산업통상자원부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제신문사가 2007년부터 공동으로 시상하고 있는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 수상 기업인들의 모임이다. 2008년 결성된 이후 총 143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매달 간담회를 열고 연 2회 회원사를 방문하는 등 회원 간 경영 정보를 교환하는 각종 행사를 마련한다. 수출 초보 기업에는 노하우도 전수한다. 지역별로 그룹을 지정해 회원들이 멘토 역할을 맡고 있다. 회원사들은 산업 현장에서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2014년 사상 최초로 한빛회 회원사의 수출 총액이 30억달??넘었다.

초대회장은 정석현 수산중공업 대표가 맡았다. 2대 회장인 오석송 메타바이오메드 대표는 두 번 연임하면서 6년간 회장을 지냈다. 지난 8일 정기총회에선 최명배 엑시콘 회장이 5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박영태/이지수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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