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이주열…'디플레 파이터'로 변신하나

입력 2016-06-10 18:13
수정 2016-06-12 20:11
통화긴축 선호하던 '매파'
물가안정 중점 둔 '한은맨'
두 차례 금리 내릴 때도 마지못해 하는 인상 줘

'화끈하게' 바뀐 이 총재
만장일치 금리인하 이끌고
금통위 후 간담회에서도 '저성장 극복' 목소리 높여


[ 김유미 기자 ] 지난 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1.25%로 내린 직후 열린 이주열 한은 총재의 기자간담회. 이 총재는 이날 ‘분명히’란 말을 일곱 번 썼다. 평소의 온화한 어조가 아니었다. 판단을 유보할 때 자주 쓰는 ‘지금으로선’이란 말은 아예 나오지 않았다. 간담회가 끝날 때마다 기자들에게 ‘발언이 어땠냐’고 묻던 공보실 직원들도 이날은 조용했다. 이 총재의 메시지는 그만큼 분명하고 단호했다.


○인플레 파이터였던 이주열

이 총재는 금통위원 중에서도 ‘매파(통화긴축 선호)’로 분류됐다. 그는 한은에서 38년 일한 ‘정통 한은맨’이다. 한은 로비에 돌로 새겨진 중앙은행의 기본목표인 ‘물가 안정’에 충실했다. 2014년 4월 취임 직후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언급하며 “기준금리 방향은 인상”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인플레 파이터’였다.

이 때문에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금리를 내릴 때도 ‘마지못해서 했다’는 인상이 강했다. 작년 6월 금리인하 직후 이 총재는 “금리정책은 경기대응일 뿐 구조개혁이 중요하다”며 추가 부양 기대감에 찬물을 부었다. 채권금리는 오히려 올랐다. 애써 금리를 인하하고 효과를 반감시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화끈해진 어법…시장 움직였다

1년이 지난 뒤인 이날은 달랐다. 구조조정이 경기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한은이 먼저 움직여야(경기부양해야)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재정과 구조개혁이 같이 가야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이 총재는 10일 한은 창립 66주년 기념식에서도 “앞으로 통화정책은 국내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추가 부양 기대감으로 채권금리는 연일 최저치를 경신했다.

시장은 이번 금리인하가 소수의견(동결 주장) 없는 만장일치였다는 데 주목했다. 한 전문가는 “만장일치는 총재가 의사결정을 주도해야 가능한 그림”이라며 “어떤 계기인지 몰라도 이 총재가 디플레 파이터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형 양적 완화’ 논란도 계기

신중했던 이 총재가 달라진 데엔 다른 계기도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4월 이 총재는 ‘한국형 양적 완화’ 논란에 속앓이를 했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놓고 정부와 피곤한 신경전을 벌어야 했다. “한은이 책임을 방기하고 뒤에 숨었다”는 외부 비판과 “정부 압박에 투항하면 안 된다”는 내부 반발 사이에서 갈등이 많았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와의 협력, 한은 내 리더십 사이에서 무엇을 택해야 할지 이 총재의 고민이 컸다”고 전했다.

소극적이던 이 총재의 태도가 바뀐 것은 지난달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였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등으로 이곳을 찾은 그는 “한은의 출자는 중앙은행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자본확충펀드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에 먼저 역제안을 던진 것이다. 여론이 한은 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8일 발표된 자본확충 방안에도 이 총재의 제안이 그대로 반영됐다. 한은 관계자는 “이를 계기로 이 총재가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전했다.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금리인하 이전에 소통이 부족했다는 시장의 지적은 쓰라리다. 미국 금리인상이 하반기에 재개되고,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 파이터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번 금리인하가 가계부채 급증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란 우려도 여전하다. 이 총재의 임기는 2018년 3월까지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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