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엔지니어' 히치콕, 공포감을 조립하다

입력 2016-06-09 18:30
수정 2016-06-10 05:01
맨발의 엔지니어들

구루 마드하반 지음/ 유정식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91쪽/ 1만6000원


[ 김희경 기자 ]
‘초콜릿바를 하나씩 뽑듯 현금을 자유롭게 뽑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들면 어떨까?’

스코틀랜드 조폐공사 엔지니어였던 존 셰퍼드배런은 어느 날 초콜릿바 자판기를 생각하다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클레이즈는 셰퍼드배런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그와 계약을 맺었다. 1960년대 세계 금융혁명을 불러온 ATM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얘기를 들으면 큰 행운이 그에게 쉽게 찾아온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어느 날 급히 현금이 필요해 은행에 갔지만 마감 시간보다 몇 분 늦게 도착했다. 은행에 문을 열어 달라고 사정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때부터 그의 목표는 현금을 자동으로 인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늘 이런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던 셰퍼드배런은 불현듯 생각난 아이디어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처럼 신의 계시에 견줄 만한 통찰은 실제로 아이디어와 경험, 기회의 융합을 유도하는 의식적이고 방법론적인 계획에서 나온다.

생의학공학자이자 미국 국립과학원 정책자문위원인 구루 마드하반은 《맨발의 엔지니어들》에서 현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상을 바꾼 위대한 엔지니어의 ‘공학적 사고’를 분석한다.

18세기부터 오늘날 디지털시대까지 이뤄진 획기적인 기술 혁신의 뒤엔 끊임없이 도전하고 연구를 거듭한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저자는 엔지니어의 공학적 사고가 기술 혁신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공학적 사고란 문제를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해 해결하는 사고 능력을 말한다.

엔지니어들은 우선 논리와 순서, 기능으로 연결된 복잡한 문제의 구성요소를 철저히 분해하고 구조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일정 제약 조건 아래에서도 설계를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얻기 위해 ‘트레이드오프(trade off)’, 즉 절충을 한다. 이런 사고에 능한 엔지니어들은 복잡한 문제를 처리 가능한 개별 요소로 분해하는 ‘모듈식 시스템 사고’를 활용하고 시행착오적 접근 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구글 엔지니어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상의 방법을 놓고 긴 시간 토론하기보다 즉각 실행해보고 반복하면서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접근 방식을 따른다.

공학적 사고는 에디슨의 전화기,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라우러의 바코드, 쿠퍼의 휴대폰, 밀스의 1회용 기저귀 등 인류 문명을 새롭게 발전시킨 위대한 혁신을 탄생하게 했다.

공학적 사고는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돼 혁신을 이끌 수 있다. 저자는 대표적인 사례로 ‘모듈식 시스템 사고’에 능했던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의 작품을 꼽는다. 그의 영화 ‘사이코’에는 한 여성이 샤워하다가 칼에 찔려죽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히치콕은 손과 칼, 샤워기, 커튼 위의 검은 그림자 등 78개의 필름 조각을 섞고 맞췄다.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필름 조각을 조립해 극도의 공포감이 느껴지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공학은 과학의 그늘에 늘 가려져 있다. 항생제 중 하나인 페니실린을 발견한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기사 작위를 받는 등 큰 명예를 누렸다. 반면 정유회사에서 활용하는 화학물 분리 과정을 적용해 페니실린을 대량생산한 화학공학자 마거릿 허친슨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저자는 “과학의 핵심이 ‘발견’이라면 공학의 정수는 ‘창조’”라며 “많은 공학적 도구가 개발됐기 때문에 인간의 과학적 능력이 향상돼 온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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