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 기자의 필드 고수 X파일 (4) '퍼팅 귀재' 아마 골퍼 김양권
300야드 장타 펑펑 날리며 무더기 버디 잡는 퍼팅귀재
작년 KPGA시니어대회 9언더 준우승한 아마 최강
10년간 전국고수 찾아가 도장격파식 맞짱골프로
일취월장 실력 키운 '괴물'
쇼트퍼팅 자신감 생기면 지나가는 퍼팅 할수 있어
[ 이관우 기자 ]
“저기 스크라치 온다!”
김양권 한국미드아마추어골프연맹 부회장(57·사진)을 프로골퍼들은 이렇게 부른다. 그의 별명 ‘스크라치’는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 아니다. 그와 골프를 쳐 본 프로들이 그렇게 부르면서 애칭이 됐다. 김 부회장은 핸디캡을 주고받지 않고 1 대 1로 승부를 겨루는 스크래치 방식 매치플레이를 자주 즐긴다. 172㎝, 72㎏의 평범한 체격에서 300야드 장타가 터져나오는 걸 본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장타만이 아니다. 한 라운드에서 버디 10개를 잡아낸 ‘퍼팅의 귀재’이기도 하다. 13번홀까지 모두 1퍼트로 끝냈다. 62타는 한국인 남자선수 최저타 기록이다.
프로 무대까지 평정한 아마 고수
그는 프로 무대에서도 통하는 아마 고수다. 지난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시니어오픈이 대표적이다.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한 김 부회장은 쟁쟁한 프로들을 제치고 2라운드 최종합계 9언더파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1라운드에선 3번 우드와 2번 하이브리드를 잃어버려 12개의 클럽만으로 치고도 2언더파를 기록했다. 그는 “파5홀 2온을 쉽게 해주는 비밀병기가 없어지는 바람에 버디를 더 많이 잡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 부회장은 1990년대 친형과 함께 자동차용품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연매출 130억원을 올릴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골프채도 이때 처음 잡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 납품처인 대기업의 갑작스러운 파산으로 수십억원의 부도를 맞기도 했다.
실의를 잊게 해준 게 골프였다. 그는 “연습장에 가면 무념무상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며 “그때만큼은 사업 고민이 사라졌다”고 했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선수로 활약한 경험이 골프를 빨리 익히는 데 도움이 됐다. “회전축을 만들고 체중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완전히 옮겨주는 타법이 거의 같았어요. 옆으로 치느냐, 아래로 치느냐의 차이밖에 없는 거죠.”
사업은 굴곡이 심했지만 골프는 줄지 않고 늘기만 했다. 1년 만에 싱글에 진입한 그를 언더파의 ‘신세계’로 이끌어 준 계기가 있었다. 이른바 ‘도장 격파’ 전국 투어다. 어느 지역에 아무개 고수가 있다고 들으면 전화를 걸어 1 대 1 대결을 신청하는 식이다. “전국 각지의 ‘난다 긴다’ 하는 고수들을 한 10년간 다 찾아다녔어요. 실력이 일취월장했죠.”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자 ‘한 수 가르쳐 달라’며 그를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다. 사기 골프계를 평정한 전국의 ‘꾼’들까지 접근해왔다. 김 부회장은 “이런저런 트릭을 부렸지만 아무 소리도 못 하게 눌러준 뒤 차비까지 줘 쫓아보냈다”며 웃었다.
긍정 마인드가 실력의 절반
장타와 컴퓨터 퍼팅 등 ‘장단(長短)’을 두루 갖춘 비결은 뭘까. 그는 “장타를 치려면 ‘경타(輕打)’하라는 말이 있다”며 “가볍게 쳐야 스위트스폿에 맞출 확률이 더 높고 거리도 는다”고 조언했다.
퍼팅에도 그만의 방식이 있다. 그는 공에 선을 긋지 않고 홀컵 방향으로 공을 정렬하지도 않는다. 발바닥 감각으로 거리와 방향, 브레이크(공이 휘면서 굴러가는 구간)를 읽은 뒤 그대로 퍼팅한다. 퍼팅 스트로크보다 그린 경사와 굴곡을 읽는 능력에 좀 더 자신이 있다는 게 김 부회장의 설명이다. “스트로크는 많이 해보면 늘게 돼 있어요. 그린을 읽는 본능은 의식적으로 계속 발달시키지 않으면 잘 늘지 않습니다.”
골프공 딤플을 하나 정해 빨간 점을 찍는 것도 독특한 습관이다. 퍼터 페이스의 스위트스폿에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다. 그는 “놀랄 정도로 집중이 잘되고 정확도도 높아진다”고 했다. 또 다른 비결은 1.5m짜리 짧은 퍼팅이다. 1석 2조의 효과가 있다.
“짧은 퍼팅에 자신이 있으면 홀컵을 지나가게 치는 자신감도 생깁니다. 안 들어가도 뒤에서 다시 짧은 퍼팅을 넣으면 되니까 강하게 치는 데 管좆遲?없어지는 거죠. 강한 직선 퍼팅이 곡선 퍼팅보다 들어갈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물론 1.5m가 오케이를 가장 잘 안 주는 거리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더 중요한 건 긍정적인 생각이다. 김 부회장은 “골프는 버디를 잡는 게임이 아니라 파를 지키는 게임”이라며 “실수를 줄여나가다 보면 버디 기회가 선물처럼 찾아오게 돼 있다”고도 했다.
프로가 되지 않은 게 궁금했다. 그는 “영원한 아마추어로 남은 ‘구성(球聖)’ 보비 존스를 존경하고, 그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마스터스를 창설한 존스는 미국오픈과 영국오픈을 모두 제패한 1인자다. 하지만 프로로 전향하지 않았다.
“골프는 실력보다 룰에 입각해 상대를 배려하는 정신이 더 중요한 운동입니다. 존스도 그런 정신을 담아 마스터스를 창설했다고 하고요.그런 꿈의 무대를 만드는 게 남은 꿈입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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