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바이오클러스터 전쟁] 80년대 공터였던 켄들스퀘어, 300여개 바이오 연구시설로 빼곡

입력 2016-06-05 19:18
(1) 보스턴-케임브리지 바이오클러스터

화이자·암젠·노바티스·사노피…글로벌 제약사 R&D센터 집결
구글·아마존도 입주…바이오 눈독

등록된 바이오 스타트업 400개…벤처캐피털, 신기술에 적극 투자


[ 이심기 기자 ]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설립한 통합 암연구센터인 코흐인스티튜트. 보스턴-케임브리지 바이오클러스터의 한복판인 켄들스퀘어에 자리 잡은 이곳에는 암치료 기술만 전문으로 연구하는 바이오랩 27곳이 입주해 있다. 나노입자를 활용한 백신전달 방법부터 항암제 침투율을 높이기 위한 초소형 주사바늘 마이크로 니들을 파스 형태 패치로 제작하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바이오 프로젝트가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400개에 이르는 스타트업

MIT에서 바이오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데빈 퀸란 박사는 “바이오랩 하나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사실상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라며 “매년 MIT에서 별도 회사로 분리되는 곳만 수십개?넘는다”고 말했다.

MIT에는 의과대학이 없지만 첨단바이오 기술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연구진의 창업 의지를 강력히 지원하면서 바이오클러스터를 이끌고 있다. 바이오 엔지니어링 분야의 대표적 학자인 로버트 랑거 MIT 교수는 1100개가 넘는 특허를 출원했으며 30개가 넘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로 이름을 올렸다. 인근 하버드대도 바이오 인큐베이터를 운영하면서 첨단 치료기술과 신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네빈 섬머스 MIT 통합바이올로지센터 소장은 “케임브리지에 등록된 바이오 스타트업 숫자만 394개에 달한다”며 “MIT와 하버드대, 보스턴칼리지 등 대학들이 배출하는 스타트업이 바이오클러스터를 끌고 가는 엔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능가하는 생태계

창업을 지원하는 인프라도 이곳을 세계 제1의 바이오클러스터로 만든 비결이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바이오 인큐베이터 ‘랩센트럴’이 대표적이다. 2014년 11월 설립된 이곳은 바이오 연구에 필요한 첨단 기자재와 실험설비를 제공하고 스타트업 간 교류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크리스티나 리카타 랩센트럴 매니저는 “스타트업이 기본 실험기자재를 확보하는 데만 최소 200만달러가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월 사용료 4000달러만 내면 된다”고 말했다. 이곳은 2년 안에 신약 개발이 가능한지 검증한 뒤 본격적인 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졸업’시키는 것이 목표다.

랩센트럴은 길 하나를 두고 화이자, 암젠연구奴?마주보고 있다. 두 블록 떨어진 곳에는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일부 연구 기능을 옮겨온 노바티스 연구개발(R&D) 시설이 들어서 있다. 최근에는 제약회사뿐만 아니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까지 바이오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찾으려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마놀리스 켈리스 MIT 부교수는 “연구 중에 막히는 게 있으면 길 하나만 건너면 해답을 줄 전문가가 많다”며 “실리콘밸리에서도 없는 연구환경”이라고 말했다.

◆미래기술에 아낌없이 투자

이곳 바이오 생태계가 유지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이 벤처캐피털이다. 이들은 MIT와 하버드대 석학들과 교류하면서 연구 분야를 지원한다. 유망 연구 분야에서는 종잣돈을 제공하면서 창업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관련 기술 협업을 제안하는 등 단순한 투자자 이상의 역할을 맡는다.

매스바이오의 존 할리난 최고비즈니스 책임자는 “벤처캐피털인 폴라리스가 MIT와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최근 5년간 설립한 스타트업이 30개에 이른다”며 “전문성을 가진 대형 벤처캐피털들이 산업 생태계의 축을 형성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로슈, 노바티스 등 콧대 높은 제약사들이 본거지인 바젤을 떠나 이곳으로 연구시설을 옮긴 것도 생태계의 파워다.

199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필 샤프 MIT 교수는 “자연과학과 엔지니어링이 융합된 연구환경,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스타트업 문화가 이곳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