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동맹, 합병 주도권 놓고 신경전 최고조…정부 "비방 자제하라"
"상대방 위기는 나에게 기회"
노선 겹치고 사업구조 닮아…90년대 이후 앙숙관계 유지
[ 안대규/김순신 기자 ]
‘비운의 동반자’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두 선사의 대주주 감자와 출자전환 후 장기적으로 합병을 검토할 예정인 가운데, 합병 주도권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현대상선의 새 글로벌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 가입을 한진해운이 내키지 않고 있는 등 신경전도 계속되고 있다. 한진해운은 디 얼라이언스 가입을 확정한 상태다.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 등이 두 회사에 갈등 대신 협력을 주문하고 나섰다.
◆맞수이자 앙숙 관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맞수’이자 ‘앙숙’이다. 1990년대부터 해운업계 1위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 왔다. 한국이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두 회사의 경쟁에 힘입은 바 크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글로벌 공급 과잉 여파로 함께 고통받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채권단 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업황 자 섟?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채권단 관리까지 받게 되면서 흑색선전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부터 올 1분기까지 한진해운이 악성루머를 퍼트렸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위험이 있으니 한진해운과 거래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외국 선주들에게 공공연히 말해 왔다는 것이다. 두 회사 모두 아시아~미주 노선 위주의 비슷한 컨테이너선 영업을 하기 때문에 한 회사 위기는 다른 회사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당시 한진해운 마케팅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전세가 역전됐다는 말이 나온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현장에서 현대상선 직원들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위험이 불거지고 있다고 강조하며 영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말 현대증권 매각대금 1조2427억원이 들어오고,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집회도 마무리되면서 유동성 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다.
반면 한진해운은 유동성 위기 우려를 날릴 만한 큰 호재가 없고 용선료 연체액도 1000억원 수준에 달한다. 그리스 선주인 나비오스는 지난달 용선료 체납을 이유로 한진해운 소유 선박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흘간 억류했다.
◆싸움 말리기 바쁜 해수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서로를 헐뜯을 때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해운업계 고위관계자는 “김 장관이 틈만 나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사장에게 ‘서로에 대한 비방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고 전했다. 한쪽 해운사가 이러이러한 비방을 당해 억울하다고 김 장관에게 신고하면 김 장관이 상대편 해운사 사장에게 주의를 주는 식이다.
해운동맹 결성 과정에서 양측 간 ‘신경전’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김 장관은 지난 1분기 이백훈 현대상선 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한진해운이 해운동맹 ‘G6’가 결성하는 새로운 동맹(디 얼라이언스)에 가입 신청할 수 있으니 현대상선이 반대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G6 소속인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가입을 반대할 것으로 예상하고 해수부가 협조를 당부한 것이다.
한진해운은 소속 동맹인 ‘CKYHE’에서 세계 5위 해운사(에버그린)와 6위 해운사(COSCO)가 이탈하며 붕괴 조짐을 보이자 갈아탈 동맹을 찾고 있었다. 새로운 동맹에 가입하려면 기존 가입사로부터 만장일치로 동의를 받아내야 한다. 현대상선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진해운 가입을 반대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해수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등이 한진해운에 현대상선의 디 얼라이언스 가입에 협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디 얼라이언스 가입사 6곳 가운데 현대상선 가입에 찬성 의사를 밝히지 않는 곳은 한진해운이 유일하다. 같은 항로 경쟁자가 들어오면 디 얼라이언스 내 입지가 약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안대규/김순신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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