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건 소송 당한 정부…1.5조 토해낼 판

입력 2016-06-02 18:20
"세금·과징금 못 내겠다" 70%…패소 땐 이자·소송비 더해 2조 물어줄 판

국세청·공정위·법무부 순 많아…재정운용 큰 부담·신뢰 훼손도


[ 김주완 기자 ] 국민과 기업들이 정부의 행정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제기한 소송 가운데 소송절차가 진행 중인 건수가 5000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과 과징금 등을 무리하게 부과했다가 정부가 개인과 기업에 되돌려줘야 할 돈은 1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31일 국회에 제출한 부처별 ‘2015회계연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부가 피고(被告)인 소송 건수는 5068건에 달했다. 부처별로는 법무부가 1367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재부(557건) 금융위원회(547건) 국토교통부(530건) 등의 순이었다. 법무부는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부처를 대신해 소송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기재부는 세무사법 위반에 따른 징계 불복, 금융위는 금융업체들의 행정처분 불복 등으로 피고가 됐다.

정부가 패소 가능성이 높다고 자체 판단해 충당금으로 쌓은 금액(소송충당부채)은 1조4461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송충당부채는 회계연도 결산일(12월31일)부터 1년 내 패소 가능성이 매우 높은 소송의 소송가액을 합산한 것이다. 정부가 1·2심에서 패소해 최종심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거나 1심이 진행 중이어도 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소송이다. 국세청이 606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공정위 2973억원 △법무부 1964억원 △관세청 946억원 △금융위 779억원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국세청과 관세청이 차지하는 비중은 48.5%로 세금 관련 소송액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공정위의 과징금 관련 소송액 비중도 20.6%에 달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심 연속 패소 사건과 3심에서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된 사건 64건의 소송가액 모두를 충당금으로 쌓았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3년 동안 세수 부족으로 무리하게 과세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과징금 부과 소송에서 SK그룹에 최종 패소해 돌려줄 347억3400만원을 소송충당부채로 잡았다. 공정위에 과징금을 낸 삼양식품도 최종 승소해 27억5100만원을 돌려받을 예정이다.

정부가 패소하면 관련 이자도 지급해야 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농심과의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환급해야 할 돈은 과징금 1080억원과 환급에 따른 가산금(이자) 109억원이다. 2010년부터 2015년 7월까지 공정위가 과징금 취소로 기업에 돌려준 이자만 992억4000만원에 달한다.

소송에 지면 정부는 상대 측의 변호사 수임료, 인지대, 송달료 등도 배상해야 한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청 등 5개 지방국세청이 부담한 해당 비용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87억원이었다.

소송 관련 충당금은 정부의 재정 운용에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전좇甄? 최근 세수 실적이 개선됐지만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 1분기 23조4000억원에 달했다. 1조5000억원가량의 소송충당금은 유사시 재정 확대를 통한 정부의 탄력적 대응을 어렵게 한다. 경제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패소 비용과는 별개로 무리한 법 집행에 따른 국정 전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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