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동 성향 판정 부쩍 늘어
산업현장 "중노위 리스크"
법리 명백한데…지방노동위 결정 '뒤집기'
소송전 불러 기업도 근로자도 결국 피해
[ 백승현 기자 ]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0일 이례적인 판정문을 내놨다. “원청기업의 계약 해지로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니 원청기업이 이들의 생활안정 대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이었다. 일본계 LCD(액정표시장치)·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유리기판 제조업체인 아사히글라스(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의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재심 판정에서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다”며 각하한 사건을 상급기관인 중노위는 다르게 판단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부하직원 앞에서 직장 상사에 대해 폭언을 하고 근무시간에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허가받지 않은 집회를 한 근로자라도 징계(정직·감급)해선 안 된다”는 중노위 판정이 나왔다. 한화테크윈 부당해고 재심 사건으로, “해고가 정당하다”는 경남지노위의 초심을 뒤집었다.
중노위가 지노위 판정과 다른 결론을 잇달아 내리면서 노동위원회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노위가 친(親)노동 성향 판결을 하는 일이 잦아지자 산업현장에는 ‘중노위 리스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서울지노위 관계자는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사건은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지노위에서 근로자 손을 들어주더라도 상급기관인 중노위에서는 신중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렸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이 역전됐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법리적으로 결론이 명백한 사건인데도 중노위로 올라가면 뒤집히는 사례가 적지 않아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중노위의 편향된 판정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원청기업이 하도급업체 근로자의 생활안정 및 재취업 대책까지 강구하라”고 한 아사히글라스 사건이다.
中勞委 "상사에 폭언, 징계 안된다"…법원 가면 뒤집힐 판정 잇달아
아사히글라스(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가 지난해 6월30일 하도급 업체 GTS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아사히글라스는 당시 유리절단·세정 하도급 업체인 GTS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그해 9월 GTS는 폐업했다. GTS에 비정규직노조가 설립된 지 한 달 만이었다. 아사히글라스는 “LG전자의 PDP TV 생산 중단으로 여유인력이 발생해 관계사의 인력을 재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GTS 노조는 “노조 설립을 이유로 원청 기업이 서둘러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며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냈다.
경북지노위는 GTS가 이미 폐업한 데다 근로자들이 아사히글라스와 직접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노위 초심을 뒤집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원청인 아사히글라스가 GTS 근로자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더해 GTS 근로자들의 생활안정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원청 기업이 하도급 업체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판정이 나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대법원은 2010년 사내하도급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주체를 원청 기업인 현대중공업이라고 판결했다. 문제는 중노위가 현대중공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한 발 더 나가 원청 기업에 실직한 하도급 업체 근로자들의 생활안정과 재취업까지 챙기라고 주문했다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노위가 노동계 친화적인 판정을 많이 내리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사히글라스 건은 이례적”이라며 “법리관계가 명백한 사건에서도 예상 밖의 판정이 나오는 일이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한화테크윈 판정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다. 직장 상사에게 공개적으로 폭언하고 근무시간 중 미허가 집회를 열어 정직·감급 징계를 받은 근로자에 대해 경남지노위는 ‘정당하다’고 했지만 중노위가 “정당한 노조활동이어서 징계사유가 안 된다”며 초심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민감한 노사문제에 대해 노동위원회 내에서 엇박자가 나면서 중노위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노위는 홈페이지를 통해 심판·조정 통계 등을 공개하고 있지만 지노위 초심유지율과 이후 법원으로 소송이 옮겨갔을 때 중노위 판단이 유지되는 비율인 재심유지율은 2014년 이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노위는 초심 및 재심유지율을 게재했던 계간지 ‘조정과 심판’을 2013년 겨울호(55호)를 끝으로, 월간지 ‘노동위원회 브리프’는 2014년 8월호(77호) 이후 발행하지 않는다. 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사건처리 결과를 놓고 언론과 국회 등 외부에서 자꾸 문제를 삼아 발행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노위 판정이 법정에서 뒤집어지는 일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중노위 재심유지율은 2013년 87.9%에서 2014년 84.5%, 지난해 84.4%(7월 기준)로 떨어졌다. 중노위 판단이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을 거치면서 바뀌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지난 26일 “아시아나항공이 사내 용모단정 규정을 이유로 수염을 기른 기장에게 29일 동안 비행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해당 기장은 턱수염을 깎으라는 팀장 지시를 어겨 비행정지 처분을 받자 구제신청을 냈다. 서울지노위는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정했지만 중노위는 “무리한 인사재량권 행사”라며 기장의 손을 들어줬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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