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정치부 기자) “저는 호텔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출장 가서 호텔에 묵어보면 서비스 경쟁력은 미국보다 한국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는 메리어트나 하얏트처럼 세계적인 호텔 체인이 없을까.”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29일 저녁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경제철학을 소개하는 토크 콘서트에 강사로 나서 꺼낸 질문이다. 안 대표의 답은 “대한민국 20대 그룹 중 12개가 자체 호텔을 갖고 있어서”라는 것이다.
안 대표는 “자기 그룹 계열사 호텔을 이용하고 거기에 만족하기 때문에 다른 호텔을 이용할 필요가 없고 ‘산업으로 키우겠다, 이걸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럴 가능성은 제로지만…”이라며 “지금 호텔을 가진 그룹들이 전부 호텔을 분사한 뒤 합쳐서 대형 호텔그룹을 만든다면, 그 정도 자산과 노하우면 5년 내에 세계적인 대한민국 브랜드 호텔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2시간여에 걸쳐 자신의 경제공약인 ‘공정성장론’ 홍보에 주력했다. 대기업의 내부거래가 한국 경제의 공정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자신이 몸담았 ?정보기술(IT) 벤처 업계의 사례도 들었다.
“제가 소프트웨어를 하다 보니 전 세계 시장구조에도 관심이 많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가장 큰 분야가 뭔지 아는가. 기업에서 커다란 규모로 쓰는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다. 해외에선 규모가 가장 큰데, 한국에는 그 시장이 거의 없다. 대기업마다 SI 업체가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대기업들의 SI(시스템통합) 업체들도 만약 분사시켜 하나로 합친다면 저는 5년 내로 한국에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가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총선 이후 뚝 끊었던 ‘강연 정치’를 지난 주말 재개한 안 대표는 특정 기업의 실명까지 거리낌 없이 꺼내며 발언 수위를 한층 높였다. 그는 “성장하고 키울 수 있는 파이인데 우리나라 대기업은 삼성은 SDS, LG는 CNS, SK는 C&C에서 전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그룹 내에서 쓰고, 만족해하고, 그걸로 끝”이라고 했다. “범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시장을 키우고 수출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 한국에 소프트웨어 회사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다.
전날 전국여교수협의회 특강에서는 “대기업이 문어발식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한두 분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서 “이미 몇 그룹은 움직이고 있고 가장 빠른 게 삼성”이라고 콕 집어 언급하기도 했다. “삼성은 석유화학 사업을 한화에 넘겨 투자분야를 좁히고, 한화는 기존 석유화학과 인수한 것을 합쳐 역량을 집중하면 세계적 수준의 실력이 된다고 본다. 그렇게 재편해가는 게 우리가 살 길이다.”
안 대표는 “재작년부터 공정성장론이라는 담론을 차근차근 정리해오고 있었고, 그걸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적용해 많은 것을 바꾸겠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그는 “국민의당과 함께 하는 의원들은 모두 다 거기에 동의해야 한다”며 “지금 열심히 정책을 만드는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민의당은 30일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안 대표의 공정성장론을 토대로 한 경제 입법을 쏟아낼 방침이다.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 기능은 강화하는 한편 벤처 창업 활성화를 지원하는 등의 다양한 법안 패키지가 발의를 앞두고 있다. 안 대표가 강연에서 집중적으로 비판한 내부거래를 규제하기 위한 강도 높은 법안도 준비되고 있다.
안 대표는 토크 콘서트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도 요청이 오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새정치’라는 옛 구호를 정리하고 ‘공정성장 전도사’로 변신하려는 그는 20대 국회의 경제 입법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끝)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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