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가의 의사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16-05-29 17:43
경제 성장의 기본 요건은 자본 축적
자본·기업가가 그런 기능 수행 주체
이를 방해하는 정책·규제 들어내야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고성능 굴삭기로 파는 땅을 곡괭이로도 팔 수 있다. 그런데 굴삭기로 한 시간 동안 파는 깊이의 땅을 곡괭이로 파내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곡괭이에는 적은 시간이 저장돼 있고 굴삭기에는 많은 시간이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즉 고성능 자본재를 사용하는 생산과 저성능 자본재를 사용하는 생산이나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생산은 시간의 차이를 낳는다.

마찬가지로 제빵기를 사용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빵을 만들 수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면 매우 빠르게 계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굴삭기, 제빵기, 컴퓨터와 같은 자본재를 사용하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때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재가 많은 생산구조를 가진 사회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소비재를 공급할 수 있으므로 풍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이로부터 자본(자본재의 화폐 평가액)이 부족하다는 말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본재는 자본가·기업가의 저축으로 획득된다. 따라서 자본가·기업가 기능을 하는 주체가 없으면 자본재를 획득할 수 없으므로 자본이 축적되지 않는다. 자본이 축적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원하는 소비재를 단기간에 대량으로 공급할 수 없으므로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잘사는 사회와 못사는 사회 간의 차이는 바로 자본 축적 정도 차이에 있다.

한국 경제를 압축 성장의 역사라고 표현하는 것은 각종 소비재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자본을 짧은 기간에 축적한 역사라는 뜻이다. 즉 자본 축적으로 풍요한 생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소비재의 대량 생산구조를 짧은 기간에 갖췄다는 뜻이다.

경제 성장과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본 축적은 자본가·기업가의 창의적이며 모험적인 활동으로 이뤄진다. 또 소비자가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구조는 자유시장에서 상시 조정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바로 저금리 정책으로 소비구조와 생산구조 간에 커다란 괴리가 생겼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서 생산구조란 생산 단계의 길이와 각 단계의 자본구조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자본 축적을 방해하고 생산구조를 왜곡시키는 정책과 규제가 넘쳐난다. 출자구조 제한, 기업소득 환류법, 기업 규모에 따른 사업 영역 제한, 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출자 제한 등의 규제가 그런 것들이다. 경제력 집중이나 동반성장 등을 앞세운 규제는 자본 축적을 억제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린다. 논란 중인 양적 완화는 또다시 생산구조를 왜곡할 것이다.

교육과 학습을 통해 형성되는 인적 자본도 마찬가지다. 잘 형성된 인적 자본에는 많은 시간이 저장돼 있다. 지식과 식견을 갖춘 사람은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이를 진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내리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반면 지식과 식견이 부족한 사람은 문제 해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높다. 부족한 지식과 식견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간의 공력(功力) 차이 역시 시간 차이를 낳는다.

사람들의 풍요한 물질적 삶을 위해서는 인적·물적 자본을 풍부하게 갖춰야 한다. 물적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이윤 동기에 이끌려 그런 기능을 하는 자본가·기업가들의 의사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상업 활동을 둘러싼 규제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또 유능한 인적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육기관들이 그런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 지금처럼 재정 지원을 조건으로 교육부의 간섭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각급 학교는 교육부가 제시하는 단기 지표의 개선에만 매달릴 뿐, 미래를 염두에 둔 창의적 인력 양성을 생각하기 어렵다.

20대 국회 개원을 계기로 국회와 정부는 물적 자본을 형성하고 축적하는 자본가·기업가와 교육부의 간섭 아래 길을 잃은 교육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밑바닥부터 새롭게 하기 바란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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