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이슈 프리즘] 산업은행 뒤에 숨지 마라

입력 2016-05-29 17:41
수정 2016-05-30 10:27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방만함과 무능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정권과 가까운 ‘낙하산’ 최고경영자(CEO)와 국책은행이라는 보호막에 안주한 직원들이 조선산업 위기를 키웠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 결과가 2013년 이후에만 4조5000억원을 투입한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다. 20조원을 쏟아붓고도 생사가 불투명한 대우조선해양도 이들의 작품인 걸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들을 위기의 주범으로 보는 건 뭔가 께름칙하다. 미필적 고의범쯤으로 보는 게 어쩌면 맞다.

산은 뒤에 꼭꼭 숨은 정부

여러 정황을 짚어 보면 그렇다. STX그룹 문제가 표면화된 건 2013년 3월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다. 정부와 산은의 의견은 사뭇 달랐다. 산은은 STX조선과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를 주장했다. 정부는 아니었다. 당연히 둘 다 살렸으면 했다. 산은이 인수하든지, 채권단이 지원토록 종용했다. PK(부산·경남) 출신 국회의원들도 STX조선을 살리라고 윽박질렀다. 홍기택 당시 산은 회장이 ‘면책 보장’을 요구하며 버텼지만 비웃음만 사야 했다. 덕분에 營?STX조선은 법정관리를 피했다. 산은 등은 그 대가로 4조5000억원을 더 털어 넣어야 했다.

이렇게 보면 조선산업 부실을 키운 주체는 정부(물론 청와대와 정치권도 포함해서다)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산은 등이 온갖 비난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정부가 철저히 이들 뒤로 숨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3년 각종 회의가 끝난 뒤 “산은이 알아서…”라는 말만 되뇌었다. 비겁하기 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GM식 구조조정’을 얘기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GM이 흔들리자 미국 정부는 2008년부터 2010년 4월까지 500억달러를 투입했다. GM은 5년 만에 정상화됐다. GM식 구조조정의 특징은 지원금액이 대규모이고, 결정이 신속했으며, 전문가에게 맡긴 데다, 정부와 미국 중앙은행(Fed) 및 노조가 적극 동참했다는 점이다.

GM식 구조조정은 글렀다

이상적인 모델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GM식 구조조정을 기대하는 건 힘들어 보인다. 당장 정부가 그렇다. 아무리 봐도 정부는 책임을 모면하기에 급급한 듯하다. 여전히 산은 뒤에 숨어서 말이다.

채권단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대해 자구계획안을 제출하도록 종용했다. 회계법인을 시켜 실사도 하고 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 차원이라지만 두 회사는 아직 멀쩡하다. 억울해하는 두 회사에 대출 연장 및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 중단이라는 카드로 압박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약간 비약하면 대우조선 부실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한 물타기 성격도 있어 보인다. 이런 정부가 국회와 노조를 설득하러 나서기는 단언컨대 힘들다.

더욱이 한국은행마저 나 몰라라다. “Fed도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은 없었다”며 짐짓 순수한 척하는 것이 한은이다. 국책은행에 돈을 빌려주면서 보증을 요구하는 걸 보면 정부는 망해도 자신들만은 살아남겠다는 먼 나라 중앙은행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은 절실함과 솔직함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설득할 건 설득해야 한다. 정부도, 한은도, 국책은행도 마찬가지다. 그저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 자꾸만 뒤로 숨으려 하면 결과는 뻔하다. 또 한 번의 구조조정 실패다.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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