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승무원들은 비상탈출을 제대로 실시했을까

입력 2016-05-29 16:15
수정 2016-05-30 09:24


(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27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동하던 중 왼쪽 날개 밑 엔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탑승했던 승객 253명은 모두 비상탈출을 통해 큰 부상 없이 탈출했는데요. 이후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비상탈출 시키는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언론과 전문가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모 통신사에서 28일 오전 0시 3분께 <‘이륙직전 연기’ 승객들 “대한항공 승무원이 더 흥분..뒤엉켜 대피”> 라는 기사가 나온 이후 이 내용을 대한항공 현직 부기장인 김승규씨가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논란이 커졌는데요. 다른 항공기를 조종하는 김씨는 이 기사가 나온 지 1시간 정도 지난 28일 오전 1시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기자가 제대로 취재도 하지 않은 채 쓴 기사”라며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모두 배운 대로 완벽하게 비상탈출을 실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김씨가 쓴 글에 20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눌리고 540회 이상 공유되는 등 반응이 뜨겁습니다.

통신사는 기사에 당시 비행기를 탑승했던 승객들의 반응을 담았습니다. 승무원들이 바로 대피를 실시하지 않고 시간을 지연하다가 갑자기 출입구를 열고서는 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식의 내용입니다. 기사는 “승객들은 한 목소리로 사고가 난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던 승무원들이 매우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김 부기장은 기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그는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정지를 하더라도 무조건 즉시 탈출 시켜선 안된다”며 “바깥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탈출을 실시하면 오히려 승객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령 바람의 방향에 따라 화재로 인한 연기가 기내로 유입, 승객들을 질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기름이 새고 있는 경우와 급정거로 인해 가열된 타이어가 폭발해 2차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2~5분의 시간만 주어지면 충분히 자체적으로 비상상황을 해결, 응급조치를 취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며 “무작정 탈출을 시켰다간 2차 사고 또는 활주로 이용 중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비행기에서 탈출해야만 하는 다양한 상황(화재 발생, 엔진 이상, 정면 돌풍 발생)을 제시하면서 기장이 비상 탈출 전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기장은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시 자동추력조절장치를 끊고 브레이크와 역추진 장치를 이용해 속도를 줄여 기체를 정지시킵니다. 이후 항공기의 위치를 관제탑에 알리고 심각한 상황이 아닐 경우 ‘승무원 자리 위치’등의 지시를 내립니다. 혹시 모를 다른 비행기와의 충돌을 방지하고 신속한 구조지원을 받기 위해서인데요. 승무원들은 각자 자기 위치를 지키면?기체 안팎의 상황을 파악하고 탈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승객들은 ‘승무원들이 5분 넘게 가만히 있었다’고 느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장을 비롯한 조종사들은 각종 경고계통 알림과 상황 메시지, 화재 경고등, 객실 승무원 보고, 타이어의 온도와 압력, 연기·냄새 등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합니다. 엔진을 끄고 연료공급을 차단하고 소화재를 터뜨리는 등 비상조치도 이뤄진다고 김 부기장은 전했습니다. 이런 비상조치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기장은 부기장에게 체크리스트 확인을 통해 비상탈출을 수행하도록 지시합니다. 만일 제대로 된 체크리스트를 따르지 않으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정해진 과정을 통해 비상 탈출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비상탈출을 실시하게 됩니다. 조종사들은 모든 승객이 다 기내를 떠난 후에 빠져 나오게 되지요.

비상 탈출을 하는 과정에서 승무원들이 보인 태도에 대한 지적도 있습니다. “소리를 마구 질렀다”는 식인데요. 김 부기장은 “항공기 탈출 제한시간은 90초인데 수백 명의 승객들이 신속히 빠져나가려면 기본적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승객들을 기선 제압해 지시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며 “뾰족한 신발은 슬라이드 훼손 방지를 위해 벗고, 자신의 짐은 내려놓고 탈출할 수 있도록 강한 어조로 승객들을 압박하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승객들은 승무원들이 흥분한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규정을 따른 것이고 덕분에 모두 안전하게 위험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김 부기장은 설명했습니다.

그는 “오늘 자칫하면 수백 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었음에도 대한항공의 잘 훈련된 운항·객실 승무원들은 평소 훈련한대로 비상상황에 대처해 단 1명의 중상자도 없이 성공적으로 비상탈출을 실시했다”며 “언론이 객관적 사실을 파악해 공정한 보도를 하고 칭찬해줄 것은 칭찬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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