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도시 이야기-용인] 이천·여주와 함께 대표적인 곡창지대…1990년대 개발붐 타고 아파트촌 변신

입력 2016-05-23 18:36
도시브랜드가 경쟁력이다 - '부채 제로' 도시 용인 <상>

사진으로 보는 용인


[ 강경민 기자 ] 용인(龍仁)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종 때인 1414년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그전까지는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으로 불렸다. 두 현을 통합하면서 용(龍)자와 인(仁) 자를 따 용인현(龍仁縣)이 됐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인근 양지군을 합쳐 용인군으로 격상됐다.

~1960년대 용인은 예로부터 인근 이천, 여주와 함께 대표적인 곡창 지대였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 수원~용인~이천~여주를 잇는 수여선(水驪線) 철도가 개통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일제는 경기 동남부를 가로지르는 수여선을 통해 쌀을 인천항으로 실어날랐다. 1945년 광복 후 경기 동남부지역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 된 수여선은 1966년 수원~여주 간 직행버스 노선이 개설되면서 1972년 폐선됐다.

1970년대 용인은 1970년대 새마을諍오?통해 도로와 마을을 정비하면서 발전의 기틀을 닦았다. 용인 농도원학교는 훗날 새마을운동가를 키워낸 모태가 된 가나안농군학교의 전신이다.

1990년대 1990년대는 ‘난개발’의 시대였다. 일산 분당 등 수도권 지역 개발붐이 일었던 1990년대 초반 용인 수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데 이어 죽전, 기흥에도 잇따라 대규모 아파트촌이 들어섰다.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5년 군에서 시로 승격한 용인의 인구는 27만2177명이었다. 20년이 지난 지난해 말엔 99만2396명으로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용인시 인구는 올해 안에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수원 창원 고양에 이어 네 번째 ‘밀리언 시티’가 될 전망이다.

용인=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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