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숨은 경제 이야기] 우리 민족 공공부조의 시작 고구려의 진대법

입력 2016-05-20 19:09

자유와 경쟁

우리나라 경제를 작동시키는 주요한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자유다. 각 경제주체들은 시장이라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공간에서 만나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수행해 나간다. 공장 주인이 어떤 물건을 얼마나 생산할지는 본인의 생각에 달려 있고, 이렇게 생산한 물건을 구입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이 밖에도 개인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자유도 향유한다. 이는 기업에도 마찬가지여서, 이윤 추구를 위해 자유로운 기업활동이 보장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경제의 특성이다.

하지만 ‘자유’ 못지않게 중요한 경제의 작동원리가 또 하나 있으니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에서 경쟁이 필수적인 이유는 자원이 희소하고 경제주체의 이윤 추구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든 사람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는 주어지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는 일을 실제 직업으로 삼지는 못한다. 사람은 많은데 일자리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쟁은 다른 이의 경제적 자유를 인정하는 표현 방식인 동시에, 자신의 경제적 자유를 현실로 실체화하는 수단이자 도구가 된다.

하지만 경제에서 경쟁이 제아무리 불가결한 요소라 할지라도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 많은 것을 지배하면 힘 없는 약자는 경쟁에서 도태돼 경제적 자유의 기회가 줄어들거나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거나 이익 추구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야기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국가경제 전체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법률로 공공부조(公共扶助)의 의무를 스스로에게 지우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공부조(公共扶助),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대한민국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면서, 이를 위해 ‘국가는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기 위해 필요한 인간다운 생활의 유지와 증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국가의 책임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공부조다. 공공부조란 국가나 지방정부가 생활이 어렵거나 생계유지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이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제공되는 공공부조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제공해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함으로써 사회 복지의 향상을 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때 지급하는 급여로는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해산급여, 장제급여, 자활급여 등이 있다. 생계급여는 의물?음식물 등 일상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항들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고, 주거급여는 임차료 등 수급자의 주거 안정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급하는 금품을 말한다. 교육급여는 입학금, 수업료, 학용품비 등을 지급하는 것이고, 해산급여는 수급자가 아이를 출산할 경우 필요한 조치와 보호를 위한 급여, 장제급여는 수급자의 사망 시 필요한 조치를 위해 마련된 급여다. 마지막으로 자활급여는 수급자의 자활을 돕기 위해 지급하는 급여로 훈련비 제공, 취업정보 제공, 창업교육 및 지원 등의 형태로 이뤄진다.

한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1999년 제정되고 이듬해 시행된 법으로, 약 17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다. 하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우리 민족의 사회보장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보다 훨씬 앞선, 장장 2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비로소 우리는 우리 민족 최초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나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장제도, 고구려 진대법

다음은 삼국사기에 실린 고구려 고국천왕 때의 일이다. 서기 194년 고국천왕이 사냥을 나갔다 길에서 슬피 우는 사람과 마주하게 되었다. 왕이 그 사람에게 우는 연유를 묻자 답하기를, “가난하여 품을 팔며 어머니를 간신히 모시며 살아왔습니다. 헌데 올해는 흉년이 너무 극심해 품을 팔 곳도 찾을 수 없고 곡식을 구하기도 어려워 어찌 어머니를 봉양할까 걱정이 되어 울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이 자를 불쌍히 여겨 옷과 먹을 것을 주어 위로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당시 국상의 자리에 올라 있던 을파소(乙巴素)를 불러 대책을 강구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우리 민족 최초의 사회보장제도라 할 수 있는 진대법(賑貸法)이다.

진대법은 한마디로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곡식을 흉년이나 춘궁기(春窮期)에 가난하고 처지가 어려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이를 가을 수확기에 갚도록 한 빈민구제의 구휼제도를 말한다. 물론 진대법 이전에도 일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구호하기 위한 정책이 시행된 적은 있지만, 항구적인 제도로서 자리 잡은 사회보장제도는 진대법이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을파소는 홀아비나 과부, 고아나 부양의무자가 없는 병자나 노인 등을 구제 대상으로 했고, 이들에게 3월부터 7월까지 가족의 수에 따라 곡식을 대여하고 10월에 이를 변제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시기를 이렇게 결정한 것은 겨울철에는 가을에 수확한 곡식을 먹으며 지내지만 추수한 양식이 떨어지고 새로 심은 곡식이 익기 전인 봄과 여름철에는 굶주림을 피할 길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진대법이 실시되자 농민이 대부분인 백성들은 먹을 걱정을 어느 정도 덜 수 있었고, 본업인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진대법은 농업이 천하의 근본이던 옛 시절, 가난한 백성들을 구호하는 본래의 목적을 톡톡히 달성한 것은 물론이고, 가난과 굶주림으로 농민이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세금 징수를 원활히 하여 튼튼한 국가 재정과 국방력 유지에도 한몫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즉, 진대법은 우리 민족 최초의 사회보장제도인 동시에 당시 계급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세수 확보를 뒷받침한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후대에 이르러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악용되기도 했지만, 진대법은 이후 疵좆?조선의 의창과 상평창, 사창과 환곡제도의 모태가 되었고, 당시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어루만지는 복지제도로서 자리매김했다.

정원식 < KDI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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