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남역 화장실 살인' 추모 메모, 돈 대가로 고의 훼손

입력 2016-05-20 16:08
강남역 추모 열기 속 메모 고의 훼손 장면 VR 포착
훼손 인증 촬영 뒤 일베에 장당 1000원 성공 보수 요구
'여혐' 갈등 둘러싸고 "심야 시간에도 훼손 시도"




한 남성이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 부착된 '노래방 화장실 살인' 추모 메모 십여장을 돈을 대가로 20일 낮 12시 30분쯤 고의 훼손했다. 지난 17일 새벽 1시경 인근 화장실에서 20대 초반 여성이 일면식도 없던 남성 김모씨(34)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면서 강남역 10번 출구 지붕 및 차도 펜스에 달리기 시작한 추모성 손글씨(포스트잇) 메모가 그 대상이었다.

↓ [단독] '강남역 화장실 살인' 추모 메모, 돈 대가로 고의 훼손 영상

↑ VR카메라(LG 360VR)로 촬영한 3차원 영상 중 훼손 장면을 2D로 확대·재편집

이날 대낮 근조 화환에 부착한 시민의 자발적 추모 메모(포스트잇)를 수차례 훼손한 뒤 사라지는 한 남성의 모습은 한경닷컴 뉴스랩(뉴스래빗)이 촬영한 가상현실(VR)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최근 일부 네티즌이 추모에 반대하며 온라인 상에서 메모 훼손을 거론한 적은 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는 처음이다.

↓ [단독 VR] 강남역 추모 메모, 돈 대가로 고의 훼손 VR 전체 영상




이날 뉴스래빗이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 현장에 촬영한 영상(붉은 색 원 안)을 보면 회색 반팔티를 입은 한 남성이 맨 가장자리에 놓인 근조 화환에서 수차례 추모 메모를 훼손했다. 3~4회에 걸쳐 떼어낸 추모 메모를 자신의 크로스백에 담았다.

이어 미리 준비해온 가로 20cm, 세로 10cm 크기의 종이 한장을 화환에 부착했다. '대출 갤러리, 포스트잇 제거 장당 1000원에 제거요청 받았습니다. 꼭 입금해주셔야 합니다. 받은 돈은 대출금 갚는데 쓰겠습니다. 2016년 5월 20일 고용주님께 대출갤러가'라고 적혔다.


뉴스래빗은 현장에서 해당 종이를 확보했다. 뒷면에 미리 흰색 양면테이프를 발라 화환에 곧바로 부착할 수 있도록 준비됐다. 이 남성은 인증 사진을 찍은 뒤 인근 강남역 9번 출구 방향으로 이동했다.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는 점심 식사를 나온 주변 직장인과 추모 시민들, 취재진 등 300여명이 몰려 있었다. 보는 눈이 많았지만 이 남성은 아랑곳않고 메모를 훼손한 뒤 돈을 요구하는 글을 남기고 사라지는 대범함을 보였다.

훼손 광경을 목격한 한 여성이 "저 사람이 포스트잇 떼어갔어요"라고 소리를 지르자 이 남성은 인근 9번 출구로 급히 사라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당시 화환에는 13~14장의 추모 글이 있었다. '여성 혐오 스톱(STOP)', "당신의 '김치녀' 조롱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다" 등 살인 피의자 남성 김씨의 '여성 혐오(여혐)' 성향을 지적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이 남성이 훼손 현장을 이탈한지 20여분 만에 디시인사이드 '대출 갤러리' 커뮤니티에 해당 인증사진이 올라왔다. 작성자명은 '포스트잇 철거', 제목은 '포스트잇 철거용역 완료했습니다'인 이 게시물에는 인증 사진과 함께 "입금해주실 일베 고용주분 계신가요?"라고 성공 보수 요구글이 적혔다. 피해 여성 추모 메모를 제거하면 돈을 주겠다던 특정 네티즌들에게 실제 입금을 요구한 것이다.



약 1시간 40분 뒤 같은 작성자는 '포스트잇 철거비 1만3000원 입금확인했습니다'라고 다시 확인글을 올렸다. 13장의 추모 메모를 훼손한 대가로 1만3000원을 받았다고 확인한 것이다. 입금주가 보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관계자인지는 명확치 않다. 다만 추모 메모를 훼손된 화환은 전날 '일베' 명의로 배달된 조화라고 현장 목격자들은 전했다.

해당 남성은 "1만원 더 보내면 내일 오전까지 리본 달아드리겠다"며 추가 훼손도 예고했다. 자발적으로 현장 추모 봉사에 참여했다는 한 여성은 이미 수차례 메모 훼손 시도가 있었다고 전했다. 심야 시간 대 메모를 뭉텅이로 뜯거나, '여성 혐오'를 지적하는 현장 분위기에 욕설을 하는 남성들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이번 강남역 화장실 살해 사건 관련 쟁점이 여성 피해 및 혐오로 모아지면서 여성 추모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일베 등 일부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들이 '여혐'으로 사건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며 추모 분위기에 반대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는 "관련 훼손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훼손의) 위법 여부를 당장 따지기는 힘들다"면서도 "의도의 경중에 따라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 등은 검토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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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신세원 한경닷컴 기자 m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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