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유럽으로 손 내민 아프리카의 서북단…푸른 보석 같은 마을을 만나다

입력 2016-05-15 16:06
모로코 탕헤르·쉐프샤우엔



우연히 본 어느 사진작가의 사진 속에서 처음 모로코를 만났다. 원색의 강렬함 뒤에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 속 신비함이 숨겨져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오래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모로코에 대한 로망을 쉽사리 떨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해협 사이로 유럽과 마주하는 아프리카의 붉은 보석 모로코. 낭만과 열정이 가득한 아프리카 북쪽의 모로코에선 숨길 수 없는 매력이 넘쳐난다.

반짝이는 항구도시, 탕헤르

잘 다듬어진 지중해의 휴양지 탕헤르는 사진으로 봐온 거칠고 오래된 풍경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해변가에는 반듯한 공원이 자리했고 노천카페마다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가깝게 마주한 모로코는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중요한 무역항이었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교차로라는 지리적 환경과 이슬람 종교가 더해져 독특한 모로코만의 문화가 탄생했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이 확장했을 때는 유럽의 이베리아반도까지 지배했다. 15세기 이후에는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현 모로코 국왕의 조부인 모하메드 5세는 유럽 통치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의 선두에 섰다. 힘겨운 싸움 끝에 독립을 쟁취한 모로코 국민은 왕족에 대한 충성과 사랑이 대단하다.

모하메드 5세를 추모하는 기념비와 광장, 모스크는 모로코에서 가장 잘나가는 관광지다. 탕헤르에 왔다면 꼭 가봐야 하는 명소가 있다. 일명 ‘헤라클레스 동굴’로 불리는 해안동굴이다. 탕헤르 시내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이 동굴엔 헤라클레스의 신화가 전해진다. 헤라클레스가 동굴에서 자라는 마법의 나무 열매를 먹고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지만 동굴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로워 보인다.

탕헤르는 항구도시의 낭만과 모로코인들의 일상을 가장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해가 지면 탕헤르의 번화가에는 젊은이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술을 마시지 않는 무슬림국가이기 때문에 차나 커피로 유흥을 대신한다. 취하지 않는 모로코는 늘 깨어있다.

블루에 매혹되다. 쉐프샤우엔

탕헤르에서 버스로 3시간, 모로코에서 가장 예쁜 마을로 불리는 쉐프샤우엔은 탕헤르에만 머물기 아쉽다면 하루쯤 다녀올 만한 도시다. 모로코 북서부에 있는 이 아담한 산간마을은 ‘모로코의 블루빌리지’로 불린다. 말 그대로 마을이 온통 푸른색이다. 15세기 중반에 건설된 쉐프샤우엔은 마을 뒤로 산봉우리 두 개가 솟아 있다. 쉐프샤우엔은 ‘뿔들을 보라’는 뜻으로 낭만적인 마을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험한 산맥 사이에서 긴 시간 삶을 꾸려온 마을 사람들의 강인한 정신은 그 이름을 쏙 닮아 있다.

수많은 여행자가 쉐프샤우엔에 매료되는 것은 걸음걸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색채 때문이다. 저절로 걸음이 느려지는 골목들을 걸으면 모로코 느낌이 물씬 나는 상점들이 여행자의 가벼운 지갑도 기꺼이 열게 만든다.

모로코의 여느 여행지와 달리 호객꾼이 달라붙지도 않고, 흥정하기 위해 머리 싸움을 할 필요도 없다. 여행자도, 상인들도, 골목을 수놓는 아이들도 이 마을 안에선 평화롭고 여유가 넘친다. 모로코에서 가장 평온하고 아름다운 사진은 쉐프샤우엔에서 나온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마을의 색채와 사람들의 느린 걸음걸이가 고스란히 담긴다. 작품사진 하나쯤 건지고 싶다면 마을의 작은 골목 계단에 앉아 10분만 기다리면 된다.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걸어가는 고양이, 젤라바(모로코 남성 전통의상)를 입은 노인, 엄마 심부름을 가는 아이. 모두가 좋은 피사체가 돼 줄 것이다.

쿠스쿠스, 모로코 전통 가정식을 맛보다

특별한 날에 외식을 하는 우리와 달리 모로코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최고로 여긴다. 탕헤르에 살고 있는 친구 야스민은 배가 고프다며 괜찮은 식당에 가자는 내 말에 망설임 없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소문으로만 들었던 모로코 대표 음식 쿠스쿠스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쿠스쿠스는 아랍어로 ‘동그랗게 잘 뭉쳐진’이라는 뜻이다. 거친 밀가루를 좁쌀처럼 돌돌 만 파스타의 일종인데 쪄 놓으면 찰기 없는 좁쌀밥처럼 보인다. 모로코인들에겐 가장 중요한 주식이다.

쿠스쿠스는 찜기에 쪄서 증기로 익히는 게 고슬고슬하게 가장 맛있다고 한다. 노란색은 향신료를 넣기 때문인데 사프란은 비싸기 때문에 강황이나 계핏가루를 첨가한다. 쿠스쿠스 위에 얹는 채소와 육류는 따로 요리한다. 닭고기나 양고기는 오랜 시간 익혀 씹을 필요없이 녹아버린다. 쿠스쿠스와 곁들여 먹는 밑반찬 올리브절임은 김치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양고기의 느끼한 맛을 잘 잡아준다. 색과 향, 음식을 담은 그릇까지 낯설지만 모로코 전통음식은 혀끝으로 맛보는 색다른 모로코 여행이다.

탕헤르(모로코)=이하람 여행작가 skyharam2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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