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이 생산되는 곳은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얻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을 가진 자는 돈과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음식을 맛깔나게 장식하는 소금은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이다. 새하얀 미세한 입자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사람의 혈액은 0.9%의 염분으로 되어있기에 소금섭취는 생명유지를 위해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아무런 간이 배지 않은 음식을 평생 먹는다고 상상만 해보아도 매우 곤욕스러운 느낌이다. 기독교에서는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것을 ‘빛과 소금’에 비유하여 표현하곤 하는데, 그만큼 소금이라는 물질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귀한 소금을 지금처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염전에서 바람과 햇빛으로 바닷물의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천일염 제조 방식이 도입된 것은 1907년이며, 소금의 자급자족이 이루어 진 것은 1955년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1961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소금은 가공이나 매매를 국가가 독점하는 전매사업 품종이었다.
전매사업이란 어떤 특정 종류의 원료나 제품에 대해서 국가가 가공·매매를 독점하는 사업을 말한다. 국가는 주로 귀하고 돈이 될 만한 품목에 대해 전매사업을 시행하여 재정적인 수입을 얻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매사업의 대표적인 품목으로 담배와 홍삼, 소금이 있었다. 그러나 수입자유화, 제조 기업의 민영화 등, 시장경쟁체제를 따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소금은 1962년부터 전매사업 품목에서 제외되었고, 홍삼은 1986년, 담배는 2001년에 사실상 전매권이 해제되어 현재 한국에서는 전매사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소금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국가가 전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소금이 귀했기 때문인데, 소금의 경제적 가치는 소금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가 보다 쉽다. 소금은 경제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금이 생산되는 곳은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얻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을 가진 자는 돈과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또한 소금이 생산되는 곳에서는 소금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몰려들어 교역이 활성화 되었고 시장이 형성되었다. 거대한 시장과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도시의 규모 또한 커졌으며, 각종 교역과 거래에 관련된 관세 및 세금 제도 역시 발달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로마를 들 수 있다. 기원전 640년에 로마인들은 로마 인근 해안에 대규모 제염소를 건설하여 소금을 채취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품질이 좋고 가격도 저렴하였는데, 이로 인해 로마는 소금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로마는 소금을 대륙으로 수출하는 역할을 했고, 후에 로마의 소금 수출은 로마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로마제국 건국의 일등 공신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소금의 전매제도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당시 로마에서 소금이 운반되던 소금길은 도로가 잘 정돈되지 않아 울퉁불퉁한 길을 통해 상품을 나르는데 문제가 있었고, 값비싼 소금이 운반되는 길이다 보니 도적들의 공격이 빈번하여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주들은 자신의 영토를 지나갈 때 통과세를 받는 대신 길을 편편하게 닦아주고, 기사들을 배치하여 상인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었다. 소금 교역이 활성화 되면서 이 ‘소금길 통행세’는 해당 도시와 영주들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 주었다. 그러자 각 도시들은 소금길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통행세를 거두는 동시에 소금 무역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도시 재정을 불려나갔고, 이러한 형태의 사업은 점차 소금의 전매제도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동양에서도 소금 전매제도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7세기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가 소금 전매제로 번영을 누렸다. 제나라는 염전을 만들어 소금생산을 늘리고, 소금에 세금을 부과해 수입을 창출했다. 또한 바닷가에 있는 이점을 살려 다른 나라들과의 활발한 해상교역을 통해 국부를 확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308년 고려 충선왕 때, 각염법(鹽法)을 통해 실질적인 소금 전매제도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부패한 관리들이 백성들에게 소금을 제대로 내어 주지 않아 문제를 낳았고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후 소금 전매제는 조선 시대에 들어서 보다 개선된 형태로 적용 퓸?갔다.
그런데 소금의 전매제도는 오랜 역사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소금의 국가독점사업을 최근까지 지속하다가 2014년 11월, 소금 전매제도를 완전히 중단했다. 기원전 7세기부터 존속되어 온 본 제도를 최근에 들어와 포기한 이유는 전매수입이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 중국은 3~5세기에 이르기까지 일부 왕조에서는 국가 재정수입 중 80~90%를 소금 전매에서 얻었을 정도로 소금 독점사업의 규모 및 수익이 매우 컸다. 그러나 2012년에는 소금 전매를 담당하는 중국염업총공사에 7억 2000만 위안, 우리 돈으로는 약 13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오히려 정부에서 보조금으로 지원해줬을 만큼 상황이 좋지 못했다.
중국은 소금의 전매제도를 폐지함에 따라 소금 가격을 자유화하고, 2017년부터는 소금의 신규 사업허가도 허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가의 전매사업은 법률적으로 규정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독점사업이기에 경쟁에 의해 수요와 공급의 상호관계에서 시장가격이 결정되는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소금 전매사업 역시 독점 공급자인 국가가 국가의 이윤이 극대화 되도록 가격을 결정하며 예측 가능한 형태로 사업을 진행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소금을 포함한 전매사업이 진행되는 품목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해외시장에 개방될 뿐만 아니라 공급의 규모 또한 거대해지는 추세이기에 더 이상 한 국가가 국내에서 특정 품목을 독점하여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정부와 시장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시장경제체제에 편승하여, 소금의 전매제도를 폐지하는 동시에 사업의 민영화를 허용했다고 볼 수 있다. 소금의 전매제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 국가의 재정적 수익사업을 담당하는 동시에 국민의 삶에 필수적인 소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지만, 이제는 정말 역사 속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남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김민정 < KDI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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