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찰대상국이지만 시장 개입
환율을 시장에만 맡긴 나라 없어
미국에는 우리 입장 적극 설득해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1분기 기업 실적이 나쁘지 않다. 상장사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 늘어났다니 말이다. 실적이 예상 밖으로 호전된 이유는 간단하다. 환율 효과다.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실적이 개선됐다. 비용절감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지만 환율 효과에 비할 바는 아니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2월 한때 달러당 1240원대까지 올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관심은 이런 실적이 계속 이어질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달러당 1130원대까지 급락했다. 미국의 추가금리 인상 지연과 중국 위안화 강세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미국의 ‘베넷-해치-카퍼(BHC)법’ 시행으로 한국이 환율조작 의심국으로 지정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다행히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벗어나 원화 환율이 반등했지만 환율이 계속 오름세를 탈 가능성은 낮다. 미국이 교역 상대국의 환율 하락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환율이 경제의 최대 변수다. 수출 국가에서 수출이 안 되니 기업 매출이 늘어날 리 없고 수익성이 좋을 리 없다. 기업 경쟁력도 이미 바닥이다.
환율이 수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변동 폭과 속도인데 원화 환율은 엔화나 위안화에 비해 늘 불리하게 움직인다. 경쟁국의 적극적인 환율정책 탓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도 미국의 환율 관찰대상국에 포함됐지만 일본 정부는 연일 공개적으로 시장 개입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엔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중국은 관리변동환율제도로 위안화 강세를 저지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한국 원화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겠다는 의지다.
한국은 어떤가. 정부 스스로 외환시장 개입을 금기시한다.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믿는다. 위기 때 환율 방어에 나선 관료들이 국회에 불려가 혼쭐난 경험이 무관치 않다지만 지나치다. 환율정책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궁금할 따름이다.
환율을 조작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국제 투기세력이 판을 치는 외환시장이다. 환율이 알아서 적정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생각이 순진할 뿐이다. 정부가 이렇게 시장 참여자들에게 환율정책을 포기한 듯한 인상을 줘서는 곤란하다.
한국이 미국의 모니터링 대상이 된 것은 환율 결정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수출을 늘려서가 아니다. 내수 위축으로 수입이 줄어든 탓이다.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다. 미국도 흑자를 문제 삼았지 시장 개입을 탓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시장 개입 탓으로 돌리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환율은 적어도 경쟁국과 같은 속도와 폭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언제까지 수출에만 기대려고 하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내수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 그게 가능할까. 서비스산업 활성화라는 晩Ю?과제는 시동조차 걸지 못했다. 자원도 없고 인구도 경제 규모도 되지 않는 나라다. 내수는 어차피 한계가 있다. 수출을 벗어나서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수출산업을 고도화하려 해도 지금의 주력인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반도체 등을 대체할 산업은 보이지 않는다. 진퇴양난이다.
산업 구조조정이 발등의 불이다. 조선과 해운도 힘에 부치지만 철강과 석유화학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경제 체력이 수술을 버텨낼 수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모든 기업이 위기다.
환율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해 수출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구조조정도 그래야 가능하다. 시장에 무리한 변화가 생기면 적극 개입해야 한다. 결코 조작이 아니다. 외환시장을 시장 자율에만 맡기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미국에는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무슨 흑자국인가. 불황에 허덕이는 나라다. 대미(對美) 무역흑자도 같은 이유에서라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국회도 미국 의회 설득에 나서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건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강화될 수밖에 없질 않은가.
급격한 원고(高)가 현실화한다면 한국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작은 수출 국가다. 환율정책만큼 중요한 정책이 또 있겠나.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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