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잡았지만…투자자 신뢰 못 얻은 두테르테

입력 2016-05-10 18:44
"경제 모르는 필리핀 대통령, 그가 뭘 할지 모르겠다"

경제분야 경험 거의 없어 불안
한달간 투자금 3400만달러 이탈

"외국인 지분 규제 완화하겠다"
두테르테, 투자자 달래기 나서


[ 이상은 기자 ]
교황이나 여성 등을 상대로 막말을 일삼아 ‘필리핀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다바오시장(71·사진)이 지난 9일 필리핀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율(39%)로 당선됐다.

두테르테는 “범죄자 10만명을 처형하겠다”는 등 ‘범죄와의 전쟁’을 공약으로 내걸어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했다. 그는 필리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장으로 일곱 차례 당선돼 22년간 재직하면서 초법적인 징벌로 범죄율을 대폭 낮춘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민심을 얻는 데 성공한 두테르테가 경제성장에 절실히 필요한 시장과 외국인 투자자의 지지까지는 아직 얻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많다.

◆無 경제공약 당선자

두테르테는 선거 기간 경제공약을 거의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내가 아는 척할 필요가 없다”며 “대통령이 되면 돈을 많이 주고 뛰어난 경제 전문가를 조언자로 고용하면 된다”고 했다. 경제공약에 목마른 투자자들은 그가 앞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 체제에서 필리핀은 지난 5년간 연평균 6.2% 성장했다. 세계은행은 필리핀을 ‘아시아의 떠오르는 호랑이’라고 표현했다. 경제 인프라 구축 및 투자 유치에 대해 ‘무지하다’는 평가를 면치 못하는 두테르테가 아키노와 같은 경제성과를 낼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그의 인기가 급격히 치솟은 지난 1개월간 외국인 투자자는 필리핀 증시에서 3400만달러를 빼갔다. 증시는 3월 고점 대비 5% 하락했다. 필리핀 페소화 가치는 달러 대비 약 2% 떨어졌다. 다른 신흥국 통화가 달러 대비 강세를 띠는 것과 대조적이다.

◆불안한 외국인 투자자

필리핀 현지에 투자한 기업은 불안을 감추지 않고 있다. 존 포브스 주(駐)필리핀 미국상공회의소 소장은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필리핀은 더 많은 도로·공항·항구가 필요하다”며 “필리핀 신정부가 인프라부문 등에서 (아키노 정부와 같은) 지속적인 정책을 유지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런 시장의 시각을 의식한 듯 두테르테 당선자는 개표 직후 외국인 투자자가 소유할 수 있는 기업지분 규제(40%)를 완화하겠다며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즉흥적 공약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자신이 잘 아는 친구를 주요 자리에 중용하는 것도 투자자에겐 걱정거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마르코폴로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카를로스 도밍게즈를 재무장관 혹?교통장관에 앉힐 것이라고 9일 기자들에게 말했다. 또 동창인 지저스 두레자 전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의 언론비서관 등 자신의 학창 시절 친구를 주요 직책에 등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치·외교부문에서도 불안정성이 커질 전망이다. 그는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부문에서도 무경험자다. 당선 직후 “대통령제는 실패했다”며 의원내각제와 연방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패닉 빠질 필요 없어”

일각에서는 외국인 투자자의 불안감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필리핀 증시 상승에 베팅하고 있는 태국 방콕의 헤지펀드 치베타캐피털 소속 알렉스 클레인탱크 이사는 “이번 대선 결과 때문에 필리핀이 성장 궤도에서 이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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