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갈라파고스의 명암

입력 2016-05-10 17:31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약 965㎞ 떨어진 적도 부근의 외딴섬. 비행기로 두 시간을 가야 닿는 갈라파고스는 19개의 화산섬과 암초로 이뤄져 있다. 가장 큰 이사벨라섬이 제주도의 두 배, 전체 육지 면적이 제주도의 네 배가 넘으니 그리 작은 건 아니다.

1535년 스페인이 처음 발견할 때는 무인도였다. 덩치 큰 바다거북과 땅거북이 많아 스페인어로 거북을 뜻하는 ‘갈라파고스’라 했다고 한다. 지금도 거북과 이구아나 등 이곳 터줏대감들이 섬을 가득 메우고 있다. 푸른 장화를 신은 것 같은 푸른발 부비새와 날개 길이 2m의 앨버트로스도 옆에서 볼 수 있다.

16~19세기 이곳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황금이나 은을 노리는 해적떼 소굴이었다. 고래 잡는 포경선 기지로도 쓰였다. 뱃사람들은 거북을 생포해 ‘살아 있는 단백질원’으로 이용했고 기름을 짜느라 멸종 위기까지 몰아넣었다.

다윈이 이 섬에 닿은 것은 1835년. 영국 군함 비글호의 동료들과 약 한 달간 머물면서 흉내지빠귀(‘다윈의 핀치’로 불리는 새)라는 이곳 유일의 종이 섬마다 조금씩 형태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진화를 설명하는 자Ъ궈쳄肩隙?힘을 얻게 됐다. 이곳도 종의 기원과 진화론의 탄생지로 유명해졌다.

여행자들은 결벽증에 가까운 규제를 감내해야 한다. 입도(入島) 인원이 제한돼 있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고, 비행기를 타기 전엔 특별검역을 받아야 한다. 도착해서도 서약서를 쓰고 정해진 길로만 다녀야 한다. 그나마 비자 없이 갈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에는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고립’ ‘외톨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다. 너무 지역적으로 잘 적응한 결과 오히려 열린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할 때 이 말을 쓴다. 일본 휴대전화 인터넷망 개발자가 전자제품 기술은 최고 수준인데 세계시장과 단절된 상황을 설명하려고 만든 말이다.

국제 표준에 어긋나는 ‘갈라파고스 규제’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가 의외로 많다. 수도권 규제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제한, 지주회사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게임셧다운제, 금산분리, 택배 증차 규제 등 7가지 역차별만 없애도 일자리가 92만여개나 생긴다고 한다. 부가가치 또한 63조원이 넘는다니 그야말로 기이한 규제들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고립돼 간다면 태평양 한가운데 갈라파고스와 무엇이 다른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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