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핀테크 성장 막는 관치

입력 2016-05-09 17:48
이수빈 생활경제부 기자 lsb@hankyung.com


[ 이수빈 기자 ] 서울 명동 지하상가 입구는 중국의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 광고로 뒤덮여 있다.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에서 알리페이로 결제하면 세금도 환급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의문이 들었다. 국내에도 수많은 간편결제 서비스가 있는데, 이를 이용하는 중국인은 있을까.

얼마 전 핀테크(금융+기술)업체 고위 임원을 만난 김에 물었다. “중국인들도 국내 업체의 페이 서비스를 이용하나요?” 그는 “예전에 천송이 코트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요? 중국인들은 그거 다 알리페이로 결제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30초면 결제가 끝나는 알리페이나 페이팔 앞에서 우리 같은 국내 업체들은 속수무책이죠”라고 했다.

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역직구)하는 외국인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1분기 역직구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85% 증가한 478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역직구 온라인몰 중 국내 간편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국내 간편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한국에 있는 통신사에서 휴대폰을 개통해야 한다. 아니면 한국에 90일 이상 체류하며 외국인 등록번호를 신청한 뒤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금융실명제를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다. 역직구 온라인몰의 간편결제 시장을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페이팔 등 외국계가 장악한 이유다.

금융실명제가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지적은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금융실명제를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자들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한 금융 공기업 고위 관계자는 “금융실명제는 성공한 정책이라고 평가받는다. 함부로 손대기 힘들다”고 말했다. ‘천송이 코트’ 사태가 있은 뒤 2년이 지났지만 금융 당국자들의 전반적 인식은 변한 게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국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동안 국내 업체들은 관(官)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 문제 제기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까막눈 관치’에 한국 핀테크가 죽어가고 있다”는 핀테크업체들의 하소연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수빈 생활경제부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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