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냉정과 열정, 사유와 행동 사이

입력 2016-05-06 17:35
"생각을 거듭하는 '햄릿형'
행동 앞서는 '돈키호테형'
둘의 조화가 미래 인간형"

박희권 < 주스페인 대사 >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는 인간의 유형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했다. 햄릿은 사유에 몰두하는 분석적이고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자신을 맹신하는 동시에 의심하고, 실수에 대해 끊임없이 자책한다. 반면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행동이 우선이다. 이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나아간다.

햄릿형 인간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로 대표된다. 햄릿은 자신의 내면을 읽으려고 시도하지만 정작 그게 잘되지 않는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며 생각하는 인간과 이성의 역할을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햄릿형 인간은 너무 생각만 거듭한다. 그러다 결국 선택의 갈림길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돈다.

햄릿신드롬은 비단 문학작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결정 장애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식사 시간만 되면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늘 고민하는 게 우리 일상이다. “요즘엔 ‘짬짜면’이 있어 괜찮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인생의 선택지에 늘 ‘짬짜면’이 있는 건 아니다.

망설임 없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은 “햇빛이 비치는 동안에 건초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신념 앞에 흔들림이 없다. 자신의 이상 실현이 삶의 최고 가치며, 이를 위해서라면 앞뒤 분간 없이 보고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 풍차를 향해 거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하인 산초를 질책하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돌진한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돈키호테의 모습 역시 소설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 성공한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보면 위험을 감수하고 다소 무모한 도전을 한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머리보다 손발이 빠른 행동파를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보이면 일단 구매부터 한 뒤 “지름신이 강림했다”며 애써 위안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햄릿과 돈키호테는 인간 본성의 양 극단에 내재된 특성을 나타낸다. 다소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이 두 유형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인간상은 무엇일까.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한 번의 선택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가혹한 시련과 고통에 처하기도 한다. 선택에 앞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다가 모처럼 주어진 좋은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고민만 하고 있다간 뒤처지기 쉽다.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다.” 독일 통일을 완성한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이다. 어디 정치인뿐이겠는가. 우리 모두에겐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모르는 ‘신의 옷자락’을 분간해 잡아채는 혜안과 결단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다. 평상시 자신이 처한 환경, 이용할 수 있는 자원과 선택 가능한 대안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자신만의 확고한 꿈과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에서도 인생의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대에 이성과 감성, 냉정과 열정, 사유와 행동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상이 바람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는 《햄릿》의 저자인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를 쓴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타계 400주기다. 공교롭게도 두 문호의 사망일은 4월23일로 같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각각 햄릿과 돈키호테를 통해 인류에게 어떤 삶의 교훈을 줬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박희권 < 주스페인 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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