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익재단에 대한 주식 출연 한도 높여야

입력 2016-05-05 17:52
기업인 기부 막는 주식 출연 한도
외국처럼 없애거나 대폭 높여야
출연자 편법행위 차단 수단은 많아

이동식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공익재단에 재산을 기부하는 행위를 출연(出捐)이라고 한다. ‘연(捐)’은 ‘손 수(手)’에 ‘작은 벌레 연(?)’자를 붙여 만든 글자다. ‘연(?)’은 꼬물꼬물한 마디가 있는 몸에 입이 달린 누에를 본뜬 글자다. ‘연(捐)’은 누에에게 뽕잎을 주는 형상이다. 누에에게 뽕잎을 주듯, 남을 위해 재산을 흔쾌히 내어줌으로써 그 재산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행위가 출연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아내와 함께 소유한 페이스북 주식 중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약 19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기부가 나오기엔 여러 제약이 있다.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이 2000억원을 공익재단에 기부한다고 밝힌 것을 비롯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기업인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출연 한도로 인해 고민한다. 재산 대부분이 기업 주식이어서다.

통상적으로 공익재단 출연 재산은 현금과 부동산, 주식으로 나뉜다. 현腑?부동산, 주식 모두 출연 즉시 공익재단의 소유물이 된다. 그런데 재벌 오너가 공익재단 주식 출연을 편법 상속 수단으로 이용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관련 규제가 생겼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공익재단에 대한 주식 출연에 발행주식 총수의 5% 한도를 둔 것이다. 공익재단이 이 한도를 넘어 주식을 출연받으면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내야 한다. 주식 출연자도 연대 납세 의무를 진다. 출연자가 좋은 일 하고서도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한쪽에선 “재벌 오너가 공익재단 주식 출연을 통해 기업을 계속 지배하는 행태를 막으려면 현행 주식 출연 한도 규제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은 “공익재단을 제대로 관리해 문제를 차단하면 되고,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선 출연 한도를 대폭 높여야 한다”고 반박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 호주 대만 등은 공익재단의 기업 주식 보유 제한이 없다. 미국은 지분율 20%까지 주식 보유를 허용하며, 공익법인의 독립성이 보장되면 35%까지 가능하다. 일본은 50%다. 도요다 에이지 도요타 전 회장은 1974년 도요타재단을 설립하면서 “도요타재단이 도요타그룹을 위해 일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일본 공익재단관계법에도 그대로 적혀 있는 말이다. 출연 한도는 높여주되, 다른 수단으로 공익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를 막으려는 입법적 유연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국이라고 유연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재벌 오너의 편법 행위가 걱정된다면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기업집단 소속 기업 이외 기업에만 주식 출연 한도를 높여주면 된다. 아울러 기업 주식을 출연받은 공익재단의 정관에 의결권 행사 등 출연자를 위한 행위 금지를 못박는 것이다. 정관 위반은 곧 인가 조건 위반이다. 이는 증여세 추징과 재단 해산, 잔여 재산 국고 귀속으로 이어진다. 그마저 불안하면 일본처럼 공익재단관계법에 “공익재단이 출연자의 이익을 위해 행위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 된다. 그 외에도 좋은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저커버그, 도요다 전 회장 같은 이들이 한국에도 존재한다. 다만 그들은 규제 때문에 ‘비단실을 뽑아내는 누에’에 ‘뽕잎’을 내어줄 수 없었을 뿐이다. ‘좋은 비단’을 생산하려면 ‘뽕잎’을 제때 줘야 한다. 한국 사회도 재산 출연으로 ‘비단’을 생산하길 바란다.

이동식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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