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금융위, 상장사 우려 감안
'헤지펀드 놀이터' 만들면 안돼
이유정 증권부 기자 yjlee@hankyung.com
[ 이유정 기자 ]
“우리는 한국 등 아시아 각국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longstanding promoter)하고 있다.”
▶본지 5월3일자 A2면 참조
2004년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해 ‘주가조작 논란’을 일으켰던 영국계 헤지펀드운용사 헤르메스자산운용이 지난 3월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연기금 및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의결권 행사 지침. 금융당국이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를 명분으로 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기 위해 올 하반기 도입을 추진하는 제도다.
헤르메스의 글은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이 금융위원회에 스튜어드십 코드 조기 도입에 대한 우려와 재고 요청을 담은 건의서를 전달한 것과 맞물려 기업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투기적·공격적 헤지펀드로 악명 높은 헤르메스가 ‘스튜어드십 코드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헤르메스는 ‘세계정복-스튜어드십 코드의 성공’이란 제목의 글에서 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을 언급하며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와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데 지원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2014년 금융위가 연 콘퍼런스에서 주제발표를 했으며 내년에는 서울에서 글로벌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공식 회의도 열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단기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들이 한국 상장사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제계의 공통된 우려다.
헤르메스는 2004년 3월 삼성물산 지분 5%를 취득했다고 신고한 뒤 같은 해 12월 국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물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을 내비친 직후 지분을 전량 팔아 불공정거래 혐의로 기소된 헤지펀드다. 2008년 무죄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석연치 않다’는 말이 금융당국 내부에서 나올 만큼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금융위 당국자는 헤르메스의 의기양양한 글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코드가 의도대로 한국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가져올지, 헤르메스 같은 헤지펀드의 배만 불릴 것인지를 말이다. 이해당사자인 상장사들의 의견도 경청하기를 기대한다.
이유정 증권부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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