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환율조작국' 오명 피했지만…원고 압력에 수출기업 부담 커질 듯

입력 2016-05-01 17:52
운신 폭 줄어든 외환당국
미국 원화절상 압박 강화에 속도 조절용 개입도 '눈치'

"1弗=1100원 붕괴는 악몽"
원고 지속땐 투자·수입 감소…"불황형 흑자" 논리로 설득을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myshin@lgeri.com >



미국 재무부가 한국을 중국 일본 대만 독일 등과 더불어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우려했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원화의 과도한 절하를 막기 위해 개입한 사실을 알리는 등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면서 한숨 돌렸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종전에 비해 미국의 압력이 한 차원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돌풍이 시사하듯 미국의 대내외 정책이 실질적 국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전망이다. 이런 사정을 반영,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외교전문잡지 ‘포린어페어(Foreign Affairs)’ 4월호 기고문에서 매우 강한 톤으로 여섯 차례나 일부 국가의 약탈적 절하를 경고했다. 미국은 대미 흑자국 통화의 정부 개입에 의한 약세를 저지함으로써 국제수지 적자를 줄이려 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63%를 차지하는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4개국에 대한 절상압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원화 강세 압력 커질 듯

앞으로 원화 강세 압력이 증폭될 것으로 우려된다. 여건은 이미 충분히 무르익었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7.7%에 달했다. 3월 이후 글로벌 금융 불안이 가라앉으면서 원화 약세 요인이 완화된 데다 미국이 당초 예상보다 금리인상 속도를 늦출 전망이다. 여기에 관찰대상국 지정으로 속도조절을 위한 ‘스무딩 오퍼레이션’마저 쉽지 않을 정도로 외환당국의 운신폭이 제약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보고서에서 미 재무부는 관찰대상국의 외환정책을 긴밀히 지켜보겠다고 밝혀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마찰을 의식해 강세흐름을 막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지난 두 달간의 환율 움직임은 이런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3월 초순만 해도 원화가 달러당 1240원을 넘어서며 지나친 약세가 우려됐지만 4월 말 현재 1130~1140원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경계심이 작용한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외환당국, 대응논리로 美 설득해야

당장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절상압력 완화를 위해 미 정부痼?지속적인 대화와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흑자가 불황형 흑자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수출이 위축되고 있지만 경기 부진으로 인해 수입이 더욱 줄어 국제수지 흑자가 늘어나고 있다. 만일 원화 강세가 이어진다면 경기둔화가 심화되면서 수입이 더욱 빠르게 위축되고 결과적으로 흑자폭이 커질 수도 있다. 대미 수입에서 반도체와 반도체제조용 장비, 항공기 등의 비중이 커 원화 강세로 인해 수출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이 악화되면 기업의 투자감소, 수입감소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설득할 필요가 있다.

경제 체질개선에 주력해야

달러당 1100원이 무너진다면 우리 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이미 2년 연속 줄어든 전체 기업매출이 큰 폭으로 쪼그라들 것이다. 성장률이 한 단계 더 하락하면서 우리 경제의 ‘일본화 진입’을 선언해야 할지도 모른다. 단순한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살펴볼 문제다.

물론 환율대응이 근본대책일 수는 없다.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우선시돼야 할 것이다.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함으로써 수입을 늘려 경상수지 흑자폭을 줄이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단시일 내에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추진 중인 구조조정은 자원의 효율배분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분명 경기위축 요인이다. 따라서 성장의 여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다소 무리한 원화 강세의 저지, 혹은 약세 유도의 필요성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myshin@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