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벼랑 끝 해운산업, 이대로 침몰하나

입력 2016-04-29 21:06
채권단에 구조조정 자율협약



국적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채권단과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자율협약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모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최대 채권은행이다. 이에 따라 정부 주도의 5대 취약업종(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건설)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조선, 해운업 구조조정을 먼저 지원하고 나머지 업종은 업계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구조조정(워크아웃)이란

워크아웃이란 경영 악화로 빚을 갚지 못하지만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은행과 협력해 자산을 팔고 필요시 자금을 지원받는 방법으로 경영정상화를 도모하는 기업개선작업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기업구조조정 제도는 법원 주도의 구조조정과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으로 크게 구분된다.

법원 주도의 구조조정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원이 주도하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이고,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은 다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따른 워크아웃과 기업-채권은행 자율협약에 따른 워크아웃으로 구분된다. 이번에 해운회사들이 신청한 것은 자율협약에 따른 구조조정이다. 강제력 측면에서 보면 자율협약에 따른 구조조정이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나 법원 주도의 법정관리보다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자율협약이 원만히 진행되지 않으면 법정관리 등 강한 구조조정 절차를 밟게 된다.

국내 양대 국적선사 무너뜨린 용선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부실화한 것은 이들이 해운 경기를 잘못 예측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초반 해운 경기가 호황일 때 비싼 사용료(용선료)를 주고 많은 선박을 빌려 와 영업한 것이 화근이 됐다. 현대상선은 전체 선박 116척 중 83척을 용선으로 쓰고 있다. 작년 매출 5조7000억원 중 2조원가량을 용선료로 썼다. 한진해운도 지난해 매출 7조7000억원 중 약 1조원을 용선료로 사용했다. 하지만 세계 경기 침체로 무역량이 감소하면서 운임료도 급락하자 용선료를 내기 힘들어진 것이다. 두 회사는 외국 선주들과 용선료를 20~30% 낮추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진해운 자율협약 ‘일단 보류’

한진해운과 채권단의 자율협약이 성공할 수 있느냐는 용선료 인하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은 용선료를 낮추겠다며 차입금(대출금)과 회사채 상환기한을 연기해 달라고 채권은행에 요구하고 있다. 또 약 4100억원을 추가로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에 용선료를 낮출 수 있는 구체적인 협상전략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배를 빌려준 외국 선주들이 한진의 용선료 인하 요청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한진해운이 용선료 인하 등에 성공한다면 채권단과 한진해운은 구조조정 자율협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다.

자율협약이 체결되면 채권단은 대출금 일부를 자본금으로 전환하게 된다. 즉 채권은행들은 채권자에서 한진해운의 주주로 입장이 바뀌는 것이다.

자율협약이 체결되지 않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법원은 관리인을 선임해 한진해운의 운영을 관리 감독하면서 회사를 다른 제3자에게 넘겨 회생할 수 있도록 한다. 만일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재편되는 글로벌 해운동맹

해운업계가 불황에 빠지면서 세계 해운동맹도 재편되고 있다. 해운회사들은 운임동맹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즉 운임을 함부로 정하지 않고 동맹 선사들끼리 협력해 결정한다. 운임동맹은 일종의 담합을 위한 카르텔이지만 오랫동안 묵인돼온 해운업계 관행이다.

그동안 세계 해운업계의 운임동맹은 ‘2M’ ‘G6’ ‘오션3’ ‘CKYHE’ 등 4개가 지배해왔다. 이들은 주요 원양 항로 물동량의 99%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11월 세계 3위 해운사인 프랑스의 CMA-CGM이 13위인 싱가포르 APL을 전격 인수하면서 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달 20일 프랑스 CMA-CGM, 중국 COSCO 등이 새로운 동맹인 ‘오션 얼라이언스’ 출범을 선언해 4개 해운동맹은 결국 덴마크 머스크라인, 스위스 MSC가 속한 ‘2M’과 ‘오션’ 등 빅2로 재편됐다. 한진해운이 속한 CKYHE와 현대상선이 속한 G6에 남은 선사는 새로운 동맹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해운회사가 동맹에 가입하지 못하면 영업에 그만큼 어려움이 따른다. 한진과 현대는 해운동맹을 통한 매출이 6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부채 조정과는 별도로 현대상선, 한진해운이 글로벌 해운동맹에 잔류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달부터 해양수산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등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두 해운사의 글로벌 해운동맹 잔류를 돕기로 했다.

조혜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Heyrij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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