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 400만원 모아 남들 자동차 살 때 PC 사서 고객관리
주식 모르던 '공대 출신' 증권맨
몇달치 월급 털어 회계·주식분석법 '열공'
신설지점에서 개인 실적 '전국 1위' 기염
"믿고 돈 맡길 수 있다" 입소문…고객 몰려
"청년들 기죽지 마라" 조언
착실하게 미래 준비하면 언젠가 기회 와
노력하면 주변에서 돕는 사람들 나타나
최고의 투자기법은 리스크 관리
개인이나 기업이나 욕심 줄여야
[ 서기열 기자 ]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 사장(56·사진)은 1985년 입사한 뒤 임원이 되기 전까지 소매영업 일선에서 1등을 거의 놓친 적이 없는 ‘영업통’이다. ‘영업의 달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객’을 강조하지만 나 사장이 투자자를 대하는 자세는 남달랐다.
입사 3년차로 서울 영등포지점에서 일하던 1987년. 증권시장 활황으로 수백만원의 보너스를 받자 동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포니, 엑셀, 프레스토 같은 차량을 뽑았다. 하지만 나 사장은 3년간 모은 400만원으로 당시로는 최신 기종인 AT급(16비트급) 컴퓨터와 도트 프린터를 샀다. 가격이 비싸 지점에서조차 구입할 엄두를 못 내는 제품이었다. “증권사 직원 중에 컴퓨터로 고객의 이름과 투자종목, 수익률 등을 관리한 사람은 아마 제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어느덧 경쟁 증권사 직원들까지 나 사장의 이름을 알 정도로 영업 실력은 정평이 났다. 5년간 영등포지점에서 일하면서 지역 고객을 확대한 뒤 신생 지점인 서울 대림동 지점으로 옮겨가서는 대신증권의 전국 점포를 통틀어 개인 실적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승진도 동기 40명 중에서 가장 빨랐다.
“임원이 되기 전에도 본사에서 근무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고객들이 아른거려 영업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는 나 사장을 서울 마포구 도화동 간장게장 전문점 서산꽃게에서 만났다.
공부야말로 최고의 투자
그는 “서산꽃게의 간장게장은 짜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며 한 조각 권했다. 속이 꽉 찬 게장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밝은 주황색의 알이 유난히 선명했다. 한 입 베어 물자 갖은 양념이 꽃게와 한데 어우러져 깊은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는 “영업도 이렇게 깊은 맛이 나야 한다”며 얘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나 사장은 광주 인성고와 조선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공대를 간 이유는 간명했다.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증권사를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입사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싱거운 문답이 끝난 뒤 나 사장의 놀랄 만한 분투기가 펼쳐졌다. 주식의 주자도 모르던 시절 지점 선배가 건네준 ‘주식투자의 매매전략’을 몇 차례나 통독하면서 저녁에는 자비로 회계학원을 다녔다.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5~1986년은 호황기였다. 증권주와 건설주가 수시로 상한가를 치면서 주식투자로 돈을 버는 사람이 많았다. “대신증권 영등포지점의 나재철을 찾아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목동에서도 투자자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저절로 영업이 되는 시기였지만 나 사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투자기법을 배우고 익혔다. 1990년에는 여의도의 한 투자자문사가 개설한 ‘PC를 활용한 새로운 주식분석기법’ 강좌를 자비 100만원을 들여 수강했다. 당시 대리이던 나 사장의 월급보다 많은 돈이었다. 나 사장은 “‘최신 주가 분석’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상승국면, 횡보국면, 하락국면별로 가장 적합한 투자 기법인 뉴럴네트워크(신경망분석)를 배웠다”며 “지금으로 따지면 ‘로보어드바이저’ 수준의 최신 프로그램으로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무엇이 투자자를 움직이나
실력과 수완, 양 박자를 다 갖춘 나 사장에게도 외환위기는 힘겨운 시절이었다. 주식시장이 공포에 짓눌려 패닉에 빠진 1997년 말, 그는 요직 중의 요직인 서울 강남지점장의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처음에 인사 발령을 받고 너무 막막했어요. 주식투자로 손실을 본 투자자의 항의가 빗발을 치는 가운데 일부 투자자가 소송을 걸어 영업 기반이 무너진 지점이었거든요.”
노릇노릇 구운 우럭찜과 붉은 빛이 선명한 대하구이가 상에 올랐다. 쫄깃한 우럭의 식감과 고소한 대하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나 사장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달라진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좋은 인재를 찾아 나섰다.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린 외환위기를 견디며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에 새로 눈을 떴다고 한다. 2000년 수백만원의 자비를 들여 연세대 상남경영원 리스크매니지먼트 과정(1기)을 수강한 이유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 출신에게 강남지점의 한 층을 헐어 투자자문 사무실을 내줬다. 많은 자산가를 개인 고객으로 두고 있는 그와 협력하면 지점의 영업 기반이 확충될 것으로 봤다. “우리가 받을 수수료를 깎아주기로 하고 그분의 고객을 우리 지점에 유치했죠.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연예인 소설가 등 이른바 큰손 투자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자산이 쌓이기 시작하니 예탁금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도 상당했죠.” 몇 년 뒤 그 투자자문사는 강남지점을 떠났지만 투자자들은 그대로 남았다. 나 사장은 강남지점장 재직 7년간 전국 1등 자리를 4년이나 차지했다.
2004년 강서지역본부장으로 임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강남지역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회사 내 6개 지역본부 중 1등을 계속 도맡아 했다. 나 사장은 영업력의 요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객으로 하여금 ‘날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물론 그 배경엔 강력한 승부근성이 있었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볼 때마다 ‘최고가 되자’고 다짐했다는 것.
어느 정도 상 차림이 마무리되자 나 사장은 매끈한 모양의 막걸리 한 병을 꺼냈다. 울산지역 전통 막걸리인 ‘복순도가(福順都家) 손막걸리’였다. 톡 쏘는 탄산의 강한 맛으로 시작해 부드러운 누룩의 진한 향내로 끝났다. 다른 막걸리보다 덜 달면서 새콤한 맛이 입맛을 사로잡았다. 나 사장은 “얼마전 울산지점을 방문했을 때 지점 직원들과 단합 회식을 하며 마셨는데 너무 맛있었다”며 잔을 권했다.
올 연말 ‘新명동시대’ 열겠다
게 껍데기에 밥 한 숟가락을 넣어 맛있게 비벼 먹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조금 생각해 보고 대답하라며 2개의 질문을 던졌다. 울산 막걸리는 인기가 좋았다. 훈훈한 취기가 기분 좋게 밀려왔다.
첫 번째는 “과연 투자는 무엇인가”였다. 나 사장의 대답은 “무조건 리스크 관리”라고 잘라 말했다. 30여년 증권맨 생활의 최종 결론이라고도 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리스크 관리를 못하면 언젠가 낭패를 겪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자중할 줄 알아야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유례 없는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청년 실업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냐”는 것이었다. 나 사장은 우선 열등감 내지는 열패감에 빠지지 말라고 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음지가 내일의 양지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세상사의 흐름입니다. 한때 세계 1위였던 조선업도 지금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