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17년 매미'

입력 2016-04-27 17:39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곤충을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지만 매미는 좀 예외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은 매미가 다섯 가지 덕을 갖췄다고 했다. 곧게 뻗은 긴 입이 선비의 갓끈 같다고 해 문(文), 이슬과 나무 수액만을 먹어 맑다 하여 청(淸), 곡식이나 과일을 해치지 않아 염치가 있다 해 염(廉), 제 살 집조차 없어 검소하다고 해 검(儉), 올 때 오고 겨울 전에 갈 줄 안다고 해 신(信)이 있다는 것이다.

여름만 되면 도심에서 한밤중까지 울어대는 통에 요즘엔 ‘밉상’이 되긴 했지만 시원한 그늘 아래 매미 소리는 여전히 한여름의 정취를 더해준다.

정작 매미가 큰 골칫거리인 곳은 따로 있다. 미국 동부다. 미국 언론들은 오는 5월 말~ 6월 초 오하이오, 뉴욕, 펜실베이니아, 메릴랜드, 버지니아 등지에 ‘17년 매미(17-year cicada)’의 한 종류인 Ⅴ종(Brood Ⅴ)이 출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마치 일기예보하듯 ‘매미예보’가 가능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 녀석들은 매년 지상에 등장하는 보통 매미와는 달리 정확히 17년 간격으로만 나타난다. 그것도 특정 지역에서만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증가한다. 1에이커(약 1200평)에 무려 150만 마리 이상이 마치 메뚜기 떼처?온 천지를 뒤덮는다. 곤충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경험이다.

미국에는 3종류의 17년 매미가 있는데 주로 동북부 지역에 서식한다. 땅속에서 17년을 산 뒤 4~6월 성충이 돼 4~6주간 번식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버린 뒤 정확히 17년 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독특한 생태는 포식자 또는 치명적 기생충을 피해 종을 보존하기 위한 전략의 결과라고 한다. 일단 갑자기 폭발적인 수가 출현하면 포식자들이 다 잡아먹기도 쉽지 않다. 17년이나 지나야 눈에 띄기 때문에 수명이 짧은 포식자들이 매미의 번식주기를 예측할 수도 없다. 포식자나 기생충과 번식주기를 일치시키지 않으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17은 소수(素數)로 다른 수로는 나눌 수가 없다. 매미의 수명이 5, 7, 11, 13, 17… 등 소수라면 다른 포식자나 기생충과 같은 해에 태어날 확률이 훨씬 줄어든다. 그리고 소수 중 이왕이면 큰 수가 그럴 확률을 더욱 떨어뜨린다. 최소 공배수가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정확히 13년 간격으로만 나타나는 매미도 있다. 보통 매미의 수명이 5년 혹은 7년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올해 나타날 녀석들은 정확히 17년 전인 1999년 등장했던 매미들의 직계 후손이다. 보통 벌레라면 징그럽다며 하찮게 여기기 쉽지만 모든 생명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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