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형(天刑)의 섬 소록도, 치유의 섬으로 거듭나다

입력 2016-04-26 17:22
수정 2016-04-28 13:29


(고재연 문화스포츠부 기자) 지난 25일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서쪽 십자봉 인근 ‘치유의 길’. 곧게 뻗은 소나무 숲 아래로 투명한 바다가 펼쳐졌다. 오랜 격리 때문에 작은 섬은 천혜의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길은 국립소록도병원 제 4대 원장이었던 수호 마사키가 1938년 원생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 중일전쟁으로 환자들의 강제노역과 인권유린이 극에 달하자 원생들은 목숨을 걸고 병원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마사키 원장은 매서운 추위에 손, 발도 성치 않았던 환자들을 동원해 20일 만에 4㎞에 달하는 길을 완성했다. 산 속에 숨어있던 환자들을 색출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환자들이 이 길을 만들다 손과 발을 잃었다.

2㎞가량 걸어가자 ‘두 번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폐허가 된 채 남아 있었다. 결핵 환자 수용 병동이었다.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섬에 갇힌 이들 중에서도 결핵 환자는 이중 격리 대상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 한 켠에는 지금은 운영되지 않은 한센인 전용 교도소가 남아 있었다.

김연준 소록도성당 주임신부와 수녀들은 한센인들의 아픔이 겹겹이 쌓이 이 길 위에 ‘치유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근에는 중일전쟁 당시 한센인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벽돌공장 터, 한센인 전용 부두였다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직전 ‘한센인 차별 논란’으로 폐쇄된 ‘제비선창’등 모두가 한센인들의 상처가 담긴 역사의 현장이었다.

벽돌 공장 터 인근에는 한센인들을 감금했던 감금실과 사망환자를 검시했던 검시실이 남아있다. 한센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이라고 했다. 일제 강점기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항거하던 환자들은 감금실에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됐다. 출감과 동시에 강제로 정관수술을 하는 등 한센인 인권탄압의 상징이 되는 건물이다. 환자들 사이에선 한센병이 발병해 소록도에 격리를 당하며 한 번, 죽은 후 시신 해부를 당할 때 한 번, 장례 후 화장을 당할 때까지 “세 번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삶이 고되고 힘들수록 절대자에게 의지하기 마련이다. 벽돌 공장 터 바로 옆에 세워진 2번지 소록도성당은 환자들이 직접 바닷가에서부터 모래를 날라 지은 성당이다. 성당 제단 중앙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물한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맞아 소록도 성당을 교구 지정 순례지로 지정했다. 지난 4월 문화재청은 2번지 소록도성당과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고흥군과 소록도성당 측은 이번 문화재 등록을 계기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치유의 길’ ‘제비선창’ 등을 개방해 신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피정(避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폐허가 된 결핵 병동 역시 신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장소로 리모델링을 계므構?있다.

김 주임신부는 “작은 상처는 큰 상처를 만나 치유되곤 한다”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더 큰 상처에도 견디고 살아가는 이들의 흔적을 보며 자신의 고통을 승화시키고,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끝)/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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