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울산 '감원 태풍'] 삼성중공업 협력업체도 1만2000명 줄인다…'고용절벽' 잠 못드는 거제

입력 2016-04-24 17:39
실직 공포 짓눌린 거제
"작년말부터 회식 사라져"…옥포동 상권 매출 반토막

현대중공업 감원 쇼크 울산
음식점 280여개 문 닫아…주민 월평균 270여명 떠나


[ 김순신/하인식 기자 ]
조선업계 ‘수주절벽’이 ‘고용절벽’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삼성중공업도 인력 규모를 줄인다. 삼성중공업 협력업체들은 올해 말까지 고용 인력 규모를 약 1만2000명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2만6000명 수준의 협력업체 고용 규모를 1만4000명 수준으로 축소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이 수주한 해양플랜트 24기 가운데 5기가 올해 인도된다”며 “추가 수주가 없기 때문에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고용절벽은 울산과 경남 거제의 ‘경기절벽’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조선회사의 구조조정이 지역 소비심리를 너무 위축시킬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불금’ 사라진 거제 경제

거제 옥포1동 번화가는 금요일(지난 22일) 오후 8시에도 어두컴컴했다. 옥포1동은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직원들이 회식하기 위해 주로 찾는 번화가다. 이 지역 상점은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문이 닫혀 있었다. 18년째 옥포동에서 보쌈집을 운영하는 임경욱 씨는 “지난해 여름 이후 회식 손님의 발길이 끊어졌다”며 “옥포동 상권에 있는 가게들의 매출은 반 토막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이 있는 장평동도 마찬가지다. 22년째 횟집을 운영하는 식당주인 김모씨는 “술 한잔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몰려들던 근로자들이 사라지고 인근 거제시청 등 관공서에서 오는 손님이 다수”라고 전했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최근 장평동 거리를 돌아보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상권이 무너져 주변 상인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거제 디큐브백화점도 직격탄을 맞았다. 22일 오후 7시 백화점 1층에 있는 손님은 6명에 불과했다. 20여명의 직원보다 적은 수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김모씨(31)는 “지난해부터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매출이 급감했다”며 “영화관 커피숍에만 사람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옥포조선소 앞 편의점은 대우조선 직원들로 붐비고 있었다.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을 찾는 근로자가 늘어난 결과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거제 지역의 편의점 매출은 작년보다 48.7% 늘었다.

창업시장에 내몰리는 근로자 수도 늘고 있다. 김동은 경남신용보증재단 거제지점 차장은 “대우와 삼성에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이 당장의 생계를 위해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올 1분기(1~3월) 재단에 접수된 창업 상담건수는 442건으로 2014년(370건)보다 19.5% 늘었다.

◆눈앞에 다가온 ‘울산의 눈물’

2014년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였던 울산도 수주절벽에 따른 경기 침체를 비켜가지 못했다.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본사 맞은편에서 횟집을 하는 김동식 사장은 “지난 30여년 동안 현대중공업 덕분에 불황 한번 겪지 않았는데 올해는 중공업 옷을 입은 손님을 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22일 현대중공업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직원 3000명을 줄인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회사 주변 상권에 위기감이 감돌았다.

울산 동구청에 신고된 음식업 영업 현황을 보면 경영난으로 폐업하는 식당이 2014년 134개, 2015년 151개였다. 최근 2년 동안에만 280여개가 문을 닫았다. 울산 동구청이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시행한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지원금 15억원은 접수 시작 3시간 만에 38개 업체에 소진됐다. 울산 동구 부동산업계에서는 “지난해 한 달 평균 270명 이상이 동구를 떠났다”며 “현대중공업의 경영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동구 지역경제는 파탄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업소가 급속히 늘면서 금융부실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울산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동구지역에서 장기 저리 대출지원을 받은 뒤 자금을 제때 갚지 못한 사고발생 채권 규모가 2014년 6억9000만원에서 2015년 15억5100만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불었다. 올 1분기에는 2014년 1년치와 맞먹는 5억3100만원이 사고발생 채권으로 확인됐다.

전영도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은 “2002년 스웨덴의 항구도시 말뫼에 있던 조선업체 코쿰스의 골리앗 크레인이 현대중공업에 1달러에 매각될 때 스웨덴 언론은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했다”며 “우리는 ‘울산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거제=김순신/울산=하인식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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