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부대' 넘어 '창조적 마니아'로…팬덤의 경제학

입력 2016-04-22 18:14
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 김희경 기자 ] “오빠, 사랑해요!”

1969년 10월17일. 이화여대 강당은 여성팬 2000여명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영국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이었다. 그가 ‘얼리 인 더 모닝 (Early in the morning)’을 부르자 팬들은 환호와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손수건 등 소지품뿐만 아니라 속옷을 벗어 무대로 던지기도 했다. 대한민국 최초 ‘오빠부대’의 발칙한 행동에 기성세대는 충격에 빠졌다. “오빠, 사랑해요!”란 말은 무절제와 광란의 상징이 돼버렸다.

47년이 지난 지금, 팬들의 이런 열광적인 모습은 ‘팬덤’이란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한류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것도 국내외에 걸쳐 확보한 폭넓은 팬덤 덕분이다. 이들은 나아가 능동적으로 문화의 확대·재생산에도 적극 참여한다. 강력한 팬덤이 현대의 새로운 신화를 쓰는 창조적 에너지가 되고 있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다. 정치인과 기업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팬덤을 확보해야 苡틂껜?시대다. ‘팬덤의 경제학’이란 용어가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팬덤은 특정 스타나 문화콘텐츠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른다. 국내에선 조용필, 서태지와아이들을 거치며 빠르게 형성됐다. 2000년대 이후엔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체계적인 조직을 이루고 영향력을 서서히 키웠다.

이들은 이제 단순히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당한 시간과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한다. ‘팬픽(좋아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등 창작물)’은 물론 주요 영상을 재편집하거나 자체 제작하기도 한다. ‘덕후’라고 불리는 마니아들은 이 중심에 서서 색다른 놀이문화를 만들어낸다. 대형 기획사나 제작사는 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며 아이디어를 얻고, 새로운 상품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팬덤은 한류 열풍의 숨은 주역이기도 하다. 팬들은 좋아하는 스타가 나오는 프로그램의 외국어 자막을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영어, 중국어처럼 많은 사람이 아는 언어가 아니면 ‘집단지성’까지 발휘한다. 누군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해외의 또 다른 팬이 영어를 동남아시아 지역 등의 언어로 재번역하는 방식이다. 스타와 콘텐츠의 가치가 팬덤을 통해 극적으로 증가하고, 마침내 완성되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적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감정의 흐름을 따를 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 등을 접할 때 뇌에선 극도의 흥분을 느끼는 쾌감중추가 반응한다. 성모상 등 종교적 상징물을 볼 때와 마찬가지다. 팬들도 자신의 행동이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절대적 믿음은 자발적으로 종료?선언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다.

팬덤이 쓰는 신화의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TV, 인터넷 등을 통해 시시각각 다양한 콘텐츠에 노출되면서 팬들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변한다. 안티팬으로 돌아서는 것도 순식간이다. 얼마 전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방송 등에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자 팬들은 직접 해명을 요구했다. 결국 그 멤버는 팀을 탈퇴했다.

이 같은 양상은 급속도로 변하는 현대 비즈니스 모델과 맞닿아 있다. 기발한 앱(응용프로그램)으로 화제가 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한순간에 잊히고, SNS에서 인증 열풍까지 불러온 과자의 인기도 쉽게 사그라진다. 시장을 주도하던 주요 기업마저 빠르게 변화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과연 누가, 어떤 콘텐츠가 국내외 대중의 마음에 오랫동안 깊숙이 자리잡을 것인가. “오빠, 사랑해요!”란 말이 지닌 창조적 에너지의 위력과 그 무게를 알고 활용하는 자만이 팬덤 경제학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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