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한 의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 박소현 옮김 / 민음사 / 696쪽 / 2만5000원
[ 고재연 기자 ]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란 한 젊은이가 1580년 런던으로 상경했다. 재산도 인맥도 없고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한 그는 무거운 정치적 주제를 우아한 시로 바꿔 읊었다. 천박한 어릿광대짓 속에 철학적 섬세함을 과감하게 버무렸다. 때로는 법학에 통달한 학자처럼 보이다가, 다음 순간에는 신학에 조예를 나타냈다.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로 불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이야기다.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인지, 그의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들이 모두 한 사람의 작품인지에 대한 의혹은 문학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한 사람의 업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작을 남겨 놓아서다. 셰익스피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스티븐 그린블랫 하버드대 교수가 이런 의혹을 해소하고자 셰익스피어 평전인 《세계를 향한 의지》를 썼다.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발표한 모든 희곡과 소네트는 물론 그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사적인 문서와 공문서까지 살펴보며 ‘인간 셰익스피어’의 실체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시골 마을 장갑 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어떻게 언어를 배우고, 고전 작가들의 우아한 문체와 시정잡배의 해학적인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는지, 그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비밀스러운 성적 취향을 어떻게 자신의 작품에 녹여냈는지 들여다본다.
셰익스피어는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연상의 여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지만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햄릿》 《맥베스 》《겨울이야기》 등 많은 작품에서 결혼생활을 악몽처럼 묘사했다. 반면 딸 수재너는 지독히 아꼈다. 후기작 《페리클레스》 《겨울이야기》 《태풍》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유다. 저자는 “작품 속엔 무의식적인 근친상간의 욕구에 뿌리 내린 깊은 내적 불안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설명한다.
그가 서거한 지 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셰익스피어는 평범함과 일상성을 놓치지 않았다”며 “그가 위대한 이유는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것의 가치를 완벽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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