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옮겨다니며 생맥주를 파는 일명 ‘맥주보이’가 다시 허용된다고 한다. 국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맥주보이를 주세법 위반으로 판단해 금지했던 방침을 열흘 만에 번복한 것이다. 국세청은 선물용 와인 택배와 치맥(치킨+맥주) 배달도 국민 편의 차원에서 허용키로 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과잉규제는 일단 사라지게 됐지만 뒷맛이 영 씁쓸하다.
주세법상 술은 허가된 장소에서만 팔게끔 돼 있다. 이를 근거로 식약처와 국세청은 지난 11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맥주보이 규제 방침을 통보했다. 실제로 야구장에서 며칠간 맥주보이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미국 일본도 다 허용하는 맥주 이동판매를 한국만 금지하는 것은 과잉규제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공무원들은 기차, 축제장처럼 야구장도 한정된 공간의 이동식 술 판매이므로 합법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놨다. 그 사이에 법령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도 식약처와 국세청의 법 해석은 손바닥 뒤집듯 금지와 허용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맥주보이 소동은 현장에서 규제와 법 집행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이뤄지는지를 여실히 입증했다. 국정감사에서 위생 문제를 지적하자 공무원들이 과잉규제를 가했고, 여론이 나빠지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이 일련의 과정이다. 더 한심한 것은 식약처와 국세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핑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는 맥주보이를 금지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국세청은 식약처가 주세법에 근거해 결정했다고 맞서는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정말 이럴 텐가.
그나마 맥주보이는 여론의 관심이 컸고 최근 한국을 찾은 유커들이 치맥파티 때 생맥주 대신 캔맥주를 마신 사실이 알려져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론의 관심 밖인 인허가나 기업의 발목을 잡는 무수한 규제는 여전히 공무원 손바닥에 있다. 선물용 와인 택배도 국세청이 대면(對面)판매를 어긴 소매점 65곳에 2억68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서야 문제가 드러났다. 매사 이런 식이니 대통령이 목이 터져라 규제개혁을 외쳐도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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