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회사 '마이너스 금리와 사투(死鬪)'

입력 2016-04-20 17:39
은행, 예금에 수수료 물리고
보험사, 보험료 올리고
운용사, 투자자에 금리부담 전가하고

시총 상위 10개사 수익성 악화
"정책 효과 의문" 곳곳서 불만


[ 도쿄=서정환 기자 ]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가계·기업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히라노 노부유키 미쓰비시UFJ파이낸셜 사장)

“정책 효과와 문제점을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한다.”(쓰쓰이 요시노부 일본생명보험 사장)

오는 27~28일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앞두고 일본 금융업계에서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 1월29일부터 시중은행이 예치하는 당좌예금 일부에 이자가 아니라 연 0.1%의 수수료(마이너스 금리)를 내도록 했다. 시중은행이 기업과 가계에 돈을 더 풀도록 유도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고육책이다.

문제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부작용이다. 일본 금융업계는 실적이 나빠지고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코너에 몰렸다.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고 고객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등 갖가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주요 10개사, 순이익 3000억엔 날아가

2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 시가총액 상위 10개 금융회사의 2016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 순이익 전망치는 이달 19일 기준 3조9016억엔(약 40조6000억원)이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결정한 1월29일(4조2090억엔)보다 3074억엔(약 3조2000억원) 줄어들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 탓에 10년 만기 일본 국채금리는 2월 이후 큰 폭 하락했다. 이날 장중 사상 최저인 연 -0.135%까지 떨어졌다.

금리가 떨어지면 은행은 예대마진(대출이자-예금이자)이 축소되고, 보험사는 자산운용 수익을 내기 힘들어진다. 일본 3대 은행지주인 미쓰이스미토모와 미즈호, 증권지주인 노무라홀딩스는 1월만 해도 올해 실적이 전년보다 늘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시행돼 최대 5% 이상 실적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우려로 다이이치생명보험 주가는 작년 말 대비 30.1% 하락했다. 미쓰비시UFJ, 미즈호, 노무라홀딩스 등도 25% 이상 주가가 떨어졌다. 도쿄증권거래소 토픽스지수 하락률(-11.9%)보다 두 배 이상 낙폭이 크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 13일 뉴욕 컬럼비아대 강연에서 “(마이너스 금리에) 여지가 있다”고 말해 추가 실적악화 공포도 남아 있다. 게다가 1월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반대한 네 명의 일본은행 심의위원(한국의 금융통화위원 격) 중 두 명이 임기만료로 교체되면 구로다 총재의 입김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결국엔 고객 부담으로

일본 금융업계는 초비상 상황이다. 수익률에서 고객 눈높이를 맞춰줄 수 없고, 자칫 역마진이 날지 모르는 상품 판매는 아예 접었다. 머니마켓펀드(MMF)와 맨邕瑛?일시불 종신보험상품이 그런 처지다. 노후 대비 연금보험과 학비로 쓰는 교육보험 등은 보험료 인상이 추진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생명보험사들이 내년 4월 보험료를 10~20%가량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고객에게 마이너스 금리 부담을 떠넘기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외국계 은행 및 증권사가 맡기는 보통예금에 이자가 아니라 수수료를 물리기로 했다. 은행들은 개인이나 자국 기업 고객 반발을 의식해 우선 외국계 금융회사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형 은행 관계자는 “대형 은행은 ‘손실 전가’란 방법을 쓰고 있지만 중소형사는 고객 이탈을 우려해 눈치를 보며 속앓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가 맡긴 자금을 관리하는 신탁은행은 18일부터 자산운용사에 마이너스 금리만큼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자산운용사는 수수료를 펀드수익률에 반영해 결국 투자자가 부담을 떠안도록 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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