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 카카오 대표에게 듣는다
직원들 '크루'라 부르며 토론문화 정착시켜
회의 때 침묵은 반대로 간주…발언하는 사람 선호
지시하는 게 아니라 설득하는 게 대표의 임무
게임, 음악 등 콘텐츠로 글로벌 시장서 승부할 것
21일 한경·AT커니 주최 디지털 포럼서 기조연설
[ 임원기 / 이호기 기자 ]
회색 반팔 티셔츠와 검은 면바지, 맨발에 신은 운동화까지…. 지난 15일 경기 성남시 판교 카카오 사무실에서 만난 임지훈 카카오 대표의 모습은 기업인보다 평범한 대학생에 가까웠다. 임 대표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9월 최고경영자(CEO)로 깜짝 발탁한 인물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을 이끄는 어려운 임무를 맡았지만 지난 7개월간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 1월 1조8700억원에 달하는 로엔엔터테인먼트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정보기술(IT)업계를 놀라게 했다. 인터넷전문은행, 대리운전 등 온·오프라인 연결(O2O) 비즈니스에도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취임 후 숨 가쁘게 달려온 임 대표는 오는 21일 한국경제신문사와 AT커니가 공동 개최하는 ‘디지털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자로 나서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라는 카카오의 새 지향점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 대표가 취임 이후 외부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행사에 앞서 카카오 사무실에서 임 대표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취임한 지 7개월이 됐습니다. 어디에 중점을 뒀습니까.
“카카오가 하는 일이 정말 다양합니다. 메신저, 검색 포털, 게임, O2O, 금융 등 사업부문이 엄청 많습니다. 이들 사업을 한데 묶어 한 방향으로 끌고 갈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모바일 시대는 이제 시작입니다. 그만큼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큰 그림에 맞춰 각 사업부문이 스스로 뛸 수 있도록 하는 게 주된 과제였습니다.”
▷어떤 그림이 나왔습니까.
“카카오는 ‘미래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가 되려고 합니다. 핵심 가치는 편리함과 즐거움입니다. 이 두 가치에는 공통분모가 있죠. 예를 들어 카카오톡은 소통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인 동시에 이모티콘 등으로 감성까지 전달해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카카오 택시 드라이버(대리운전) 페이(간편결제) 뱅크(은행) 등은 편리함, 페이지(웹툰 웹소설) 게임 멜론 등은 즐거움의 영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술을 통해 편리함과 즐거움의 측면에서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가 카카오의 지향점입니다.”
▷카카오가 해외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은 (해외시장에 가져가기에)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메신저는 이미 나라별로 승자가 명확하게 가려졌습니다. 카카오는 그동안 국내 사업을 우선순위에 놓다 보니 자원을 해외로 돌릴 여력이 부족했죠. 메신저가 아니라 게임이나 음악과 같은 콘텐츠로 승부한다면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다음게임이 배급한 ‘검은사막’이 최근 유럽 시장에서 대박을 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유럽지역 서비스를 시작한 검은사막은 유료 가입자 40만명, 하루평균 이용자 20만명, 동시 접속자 10만명이라는 기록을 내며 순항하고 있다는 게 카카오 측 설명이다.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최근에 카카오가 자산 5조원이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여러 제약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기사가 많이 나왔잖아요. 우리는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할 당시에 규제에 걸릴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계속 성장하는 한 언젠가는 대기업 규제를 받을 텐데 이 때문에 음악 기반의 콘텐츠 플랫폼을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카카오가 택시 대리운전 등 O2O사업을 확장하면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대리운전을 예로 들겠습니다. 20만명에 달하는 국내 대리운전 기사들은 성격상 1인 기업에 가깝습니다. 이들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개업체만 보면 안 됩니다. 카카오가 나서서 소비자 편익을 높이고 대리운전 기사 20만명의 삶을 지금보다 개선할 수 있다면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이죠. 미용실 예약 서비스인 카카오 헤어샵은 기존 선도 업체이던 하시스를 인수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카카오가 들어갈 수 있는 오프라인 영역이 어디인지 대충 알 수 있습니다. 마구잡이식으로 확장하는 게 아닙니다.”
▷외부에서 30대 젊은 CEO가 온 데 대해 회사 내부 갈등은 없습니까.
“저희는 직원을 크루라고 부릅니다. 한 배를 탔다는 뜻에서죠. 서로를 영문 이름으로 부릅니다. 저도 회사에서 ‘지미’라고 불립니다. 대표에게조차 ‘왜요’라며 반기를 드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돼 있습니다. 저는 질문하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회의 때 ‘침묵은 반대’라고 선언하고 시작합니다. 저 역시 크루들과 토론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해를 못 시키면 ‘다음에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올게요’라며 물러설 때도 있습니다.”
▷CEO로서 어쩔 수 없이 지시해야 할 때도 있을 텐데요.
“저는 거의 지시를 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합니다. 휴대폰을 두 개 쓰는데 깔린 앱(응용프로그램)만 수백개에 달합니다. 이걸 전부 다 씁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평가하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꼬치꼬치 물어봅니다. 질문을 통해 건강한 토론을 점화시키고 스스로 해결책을 고민하도록 합니다.”
▷포털 다음은 정체된 조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꼬리표는 편견일 뿐입니다. 세상에 일 안 하고 ‘멍 때리고’ 싶어하는 직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직원이 일을 안 하고 있다면 경영진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죠. 회사가 비전을 제시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주면 직원들도 최선을 다해 뜁니다. ?역할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종 장애물을 치워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김범수 의장과 5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김 의장은 통찰력을 갖춘 분입니다. 김 의장이 화두를 던지면 저는 그에 맞춰 실행 계획을 짭니다. 그런 측면에서 궁합이 잘 맞는 편입니다. 로엔엔터테인먼트 인수도 김 의장이 아이디어를 냈고 저와 함께 딜을 성사시켰습니다. 김 의장은 기업의 혁신이 세상을 바꾼다는 ‘소셜임팩트’에 강한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워커홀릭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미술관에 가서 세 시간 동안 구경하고 오라고 하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입니다. 각종 연구 보고서를 읽거나 글로벌 동향을 알 수 있는 국제 회의 영상을 시청하면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카카오톡 가입자 4000만명의 삶을 바꾸는 일만큼 신나고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임원기/이호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