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동의 데스크 시각] 한국관광, '특별한 경험'을 팔자

입력 2016-04-17 18:06
서화동 문화스포츠부 부장 fireboy@hankyung.com


미국 시애틀에 있는 레포츠용품 매장 REI 플래그십 스토어는 제품보다 경험을 먼저 판다. 이곳을 찾은 소비자는 높이가 20m에 육박하는 인공암벽을 오르며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사기 전에 시험해 볼 수 있다. 산악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이 150m의 인공트랙, 등산화의 착용감을 점검하는 인공탐방로, 캠핑용 비옷의 방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샤워 공간도 있다. 단순히 상품만 파는 곳이라기보다 매장 전체가 일종의 테마파크처럼 꾸며져 있다. 전시(구경)-경험-구매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경험에 목마른 시대

‘상품이 아니라 경험을 팔라’는 말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는 마케팅 명언이다. 평면적 정보가 입체적 정보로, 간접적 정보가 직접적인 정보로, 공유하던 정보가 ‘나만의 정보’로 바뀌는 과정이 경험이고 체험이다. 경험재는 상품이나 서비스보다 한 단계 위의 재화로 평가될 정도로 경험이 강조되고 있다.

인터넷·모바일 덕분에 각자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영역은 무한대로 커졌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대부분 간접적이고 평면적이다. 나만의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경험에 목말라하고 있다. 경험 또는 체험 상품에 환호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지난달 말 방한한 중국 아오란그룹 임직원 6000명을 열광케 한 인천 월미도 치맥(치킨+맥주)파티의 핵심은 ‘경험’이었다. 튀김닭과 맥주는 중국에서도 흔하다. 하지만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에서 본 ‘치킨+맥주’를 본고장에서 맛보는 것은 파티 참가자 각자를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데려가 주는 ‘경험’이다.

근래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콘텐츠들도 대부분 경험과 관련된 것들이다. 집에 앉아서도 야구장에 간 것처럼 생생한 중계방송을 즐기고, 경매에 나온 주택과 건물도 마치 찾아가서 보는 것처럼 확인할 수 있다. 감각과 감정을 자극하는 체험이 VR 콘텐츠의 매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야기에 경험의 옷 입히자

경험 마케팅이 가장 필요한 분야가 관광산업이다. 몇 년 전 헝가리에 갔을 때였다. 부다페스트 서북쪽 미슈콜츠 인근 디오죄르 고성에 도착하자 옛날 공주 차림의 젊은 여성과 기사 복장을 한 남자가 마중을 나왔다. 성을 안내하는 가이드였다. 성 안의 옛날 무기전시실에선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창검을 휘둘러볼 수도 있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한·중 양국에서 엄청난 붐을 일으킨 드라마 ‘태양의 후예(태후)’의 국내 촬영지에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몰려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콘텐츠)라도 그것만으로는 금세 한계에 직면한다. ‘별그대’의 촬영지인 송도 석산이나 인천대 도서관 등지를 찾아간 월미도 치맥파티 참가자들이 볼거리나 체험거리가 없어 적잖게 실망했다고 한다. ‘태후’의 인기가 시네마·드라마 투어로 이어지고 지속적인 효과를 내려면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소비자는 먼저 스토리에 감동하고, 두 번째로 경험에 감동한다.

서울과 제주에 집중된 관광객들이 각 지방으로 고루 찾아가도록 하는 지방관광 활성화의 관건도 스토리와 경험이다. 잘 만든 이야기에 ‘경험’의 옷을 입혀 주면 감동하기 마련이다.

서화동 문화스포츠부 부장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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