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가 경제회복에 '찬물'…미국 "엔저 용인 않겠다" 급선회

입력 2016-04-17 17:53
제동 걸린 일본 엔저 정책

미국 '섣부른' 금리 인상으로 수출경쟁력 하락
대일 적자 6년새 54% ↑…우방국 봐줄 여력 없어
"대선용 보여주기" vs "글로벌 통화전쟁 격화"


[ 박수진 / 서정환 기자 ] 미국과 일본 간 엔저(低) 환율정책을 둘러싼 충돌은 그 불똥이 다른 나라의 환율정책에도 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교역국들의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를 경계해왔다. 주로 대(對)미 무역흑자국인 중국과 한국 등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자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를 도모한다며 문제 삼아왔다.

반면 같은 대미 무역흑자국이지만 일본에 대해선 양적 완화를 통한 통화가치 하락이라며 엔저를 용인해줬다. 미국이 그런 일본까지 걸고넘어진 것은 ‘달러 약세’를 유지해 자국 경기를 부양하려는 전략 선회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커지는 강(强)달러 위기론

미국이 일본의 외환시장 추가개입 의지에 급제동을 걸고 나선 배경으론 미국의 절박한 사정을 꼽을 수 있다. 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올 들어 미국의 상황이 일본의 사정을 좋殮?힘들 만큼 어렵게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월 무역적자는 471억달러로 6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2006년 이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이 낮아지다가 지난해 2.7%로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 중 대일 무역적자는 지난해 686억달러로 2009년 이후 6년 만에 54%나 늘었다.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 증가 등 이런 추세라면 2020년께 미국의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이 2006년 수준(GDP의 6%)까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역적자 원인으로는 부진한 해외시장 상황과 강달러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해 12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두 달 동안 2~3% 상승했다. 달러화가 강세면 미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은 떨어진다.

무역수지가 반영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4분기 연속 둔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2분기 3.9%, 3분기 2.0%, 4분기 1.4%에 이어 올해 1분기엔 1% 아래로 미끄러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이 최근 “지난해 12월의 기준금리 인상이 실수는 아니다”고 강변한 대목은 이런 경제 상황을 우려한 일각의 ‘섣부른 인상’ 비판론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 정치적인 제스처?

옐런 의장은 3월 ‘기준금리 인상 속도조절’을 거론하며 달러를 약세로 돌려놨지만 해외 상황은 녹록지 않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추가 양적 완화 계획을 발표하거나, 외환시장에 개입하면 달러화는 다시 강세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 내 정치적인 기류도 심상치 않다. 공화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이미 무역적자가 큰 쟁점으로 부각됐다. 현재 공화당 경선 선두인 도널드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면서 교역국의 환율조작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는 환율조작국에 45%의 보복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브라질 등 신흥국은 2010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때 미국의 양적 양화도 결국 환율조작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시 미국은 내수 침체를 해결하기 위한 통화·재정확대 정책의 부산물로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용인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들 국가를 설득했다. 신흥국의 반발을 의식해 이젠 일본의 추가 양적 완화나 외환시장 개입을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제스처로도 해석되는 까닭이다.

한 환율전문가는 “제이컵 루 장관의 발언은 글로벌 통화전쟁의 격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국제통화기금(IMF)의 한 고위관계자는 “루 장관이 엔저정책을 반대한 게 아니라 직접적인 시장개입은 안 된다는 시그널을 전달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워싱턴=박수진/도쿄=서정환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