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상처뿐인 영광…대기업 집단 지정제도

입력 2016-04-08 20:08
30여개 법령서 전방위 규제 … 경제력 집중 막으려는 취지이나 성장에 걸림돌


[ 강현철 기자 ]
인터넷기업인 카카오와 바이오업체인 셀트리온이 최근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적지 않은 경영 규제가 새로 가해지게 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카카오나 셀트리온이 삼성 같은 큰 기업이 아닌데도 똑같이 규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약칭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것이다. 이 제도가 무엇이고 왜 시행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란?

세계 각국은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 ‘경쟁촉진법’ 또는 ‘반(反)독점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에 해당하는 법으로 공정거래법을 제정해 1981년 4월부터 시행 중이다. 한국 공정거래법은 경쟁 제한 행위를 처벌하는 ‘경쟁 촉진 규정’ 외에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큰 기업을 규제한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바로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 지정 제도)이다. 쉽게 말해 규모가 큰 회사는 경쟁 제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들을 별도로 선정해 특별 관리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 선정 기준은 회사가 얼마나 자산을 가지고 있는지다. 1987년 도입 당시 기준은 자산총액 4000억원이었으나 1993~2001년 자산 기준 상위 30대 그룹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이후 상위 30대 그룹만 규제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따라 다시 자산 기준으로 바꿔 2002~2007년에는 자산 2조원 이상, 2008년부터는 9년째 자산 5조원 이상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이 조정되지 않아 벤처 출신 기업들까지 지정되고 있는 것이다.

65개를 대기업집단으로 지정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1일을 기준으로 대기업집단을 발표하고 있다. 올해는 65개를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벤처기업에서 출발한 카카오와 셀트리온, 하림 외에 SH공사, 한국투자금융, 금호석유화학 등이 새로 지정된 반면 홈플러스와 대성은 제외됐다. 이로써 대기업집단 수는 지난해 61개에서 네 개 늘었다. 카카오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음악콘텐츠기업 로엔을 잇따라 인수합병(M&A)하면서 창립 10년 만에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바이오제약업체인 셀트리온도 창립 14년 만에 자산 총액이 5조8550억원으로 불어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닭고기 가공업체인 하림은 지난해 해운업체인 팬오션(옛 STX팬오션)을 4조2000억원에 인수하면서 4조7000억원이던 자산이 9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자산 기준 한국의 10대 대기업집단은 삼성, 현대자동차, 한전, LH, SK, LG, 롯데, 포스코, GS, 한국도로공사 순이다. 또 65개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수는 1736개로 지난해보다 40개 늘었다. 롯데가 93개로 가장 많았고 SK(86개), GS(69개), LG(67개)가 그 뒤를 이었다.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30개가 넘는 규제 새로 가해져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중소·중견기업에는 없는 수많은 규제들이 한꺼번에 가해진다. 카카오나 셀트리온도 공정거래법·상법·금융지주회사법 등 30여가지 법률에 근거해 30여개나 넘는 새로운 규제를 따라야 한다.

먼저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데 제한이 가해진다. 상호출자와 신규 순환출자, 채무보증이 금지된다.

상호출자는 대기업집단에 속한 두 개의 계열사가, 순환출자는 세 개 이상의 계열사가 돌아가며 자본금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은 특정 기업을 정하지 않고 어떤 기업이든지 경쟁을 제한할 경우 상호출자 또는 순환출자를 규제한다. 채무보증은 계열사가 자금이 필요해 돈을 빌릴 때 보증을 서주는 것이다. 기업들의 신용도가 약할 때 채무보증은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자금조달 수단이 됐다. 시장 진입도 제한된다.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꼽힌 품목에는 새로 진출할 수 없고, 이미 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기업이라면 사업을 축소해야 한다. 대기업집단에 금융회사가 있다면 그 금융사가 가지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도 제한받는다. 가령 금융계열사가 비(非)금융계열사 지분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의결권은 15%만 행사할 수 있다.

대기업 규제는 외국에선 ‘난센스’…규제 선진화 시급

한국이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대기업=악(惡), 중소기업=선(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은연중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한국처럼 규제를 가하는 나라는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전무하다. 카카오의 한 관계자는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 확장이 어려워지게 됐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또 금산분리 정책으로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로 참여하기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셀트리온은 “그동안 지주회사가 채무보증을 해서 계열사들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는데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돼 난감하다”고 전했다.

외국에선 덩치를 기준으로 규제하는 정책을 쓰지 않는다. 구글은 인터넷 검색, 광고, 통신, 자동차, 의료 등 100여개의 사업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구글의 사업 확장을 문어발이라고 하지 않는다. 정부가 따로 규제하는 것도 없다.

대기업집단 제도가 현재 젊고 혁신적인 기업들까지 옥죄는 결과를 낳으면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현행 자산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올리거나, 10대 기업 소속 회사들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집단은 세계 각국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업 유형”이라며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기업을 분류해 규제하는 대신 개별적인 불공정행위를 처벌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선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피터팬 신드롬'을 아시나요?

‘피터팬 신드롬(Peter Pan syndrome·피터팬 증후군)’은 이미 성인이 됐는데 행동은 피터팬처럼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현상을 뜻한다. 기업 경영에선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커가지 않고 안주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왜 대기업으로 크지 않으려 하는 걸까. 대기업이 되면 정부 혜택은 없어지는 대신 규제는 많아지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정부의 각종 자금을 지원받고, 세금도 적게 낸다. 중소기업청을 비롯한 정부 부처가 이처럼 지원해주는 사업은 무려 160가지에 이른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해도 이런 혜택 중 일부는 유지된다.

하지만 대기업이 되는 순간 혜택은 사라지고 많은 규제가 따른다. 새로 따르는 규제는 190가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니 기업들이 ‘어른(대기업)’이 되지 않고 ‘피터팬(중소·중견기업)’으로 남으려 하는 것이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고 다시 대기업이 되는 단계마다 수십 가지 규제가 더해진다”며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증후군’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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