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성 "경제가 나빠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 반대 "경제에 심각한 부작용 불러올 수도 있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이 총선 공약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한국판 양적 완화’를 들고 나왔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한은)이 산업금융채권(산금채)과 주택담보대출채권을 매입, 직접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주택담보대출 상환기간도 늘려주겠다는 것이다. 양적 완화 주장은 마침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자칫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한 시점에 나와 치열한 찬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있는 반면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 중인 만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긍정론도 있다. 한국판 양적 완화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강봉균 위원장은 “산업은행이 이전에도 산업(조선, 해운 등)에 금융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과감히 해보자는 것이 한국판 양적 완화”라며 “그러려면 당장 산업은행이 가진 돈을 가지곤 모자라는데 그 규모를 조금 늘리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한은이 도울 방법이 있어 돕는다면 그것이 양적 완화라는 개념이다”며 “일본처럼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자는 얘기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경제는 성장률 3%를 넘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렇게 하려면 경제정책을 상당히 과감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가 나빠지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양적 완화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에 대해 “미국 중앙은행이나 일본, EU(유럽연합) 중앙은행들은 독립성이 없어서 양적 완화를 했느냐”고 반문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단기적 정책과 약간 센 처방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기준금리가 연 1.5%인 상황에서 양적 완화라는 말을 쓰기가 모호하긴 하지만, 양적 완화에 준하는 강한 팽창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지금 한국은 모든 경제지표가 위기보다 더 무서운,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어 국내 상황만 생각하면 양적 완화 도입이 바람직하다”며 “다만 미국이 금리를 올리려는 상황에서 한국이 양적 완화를 하면 자본유출 우려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감안하면서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반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를 살린다고 하면서 기껏해야 돈의 양을 늘리고 금리를 싸게 한다고 해서 기업이 투자를 하겠느냐”며 “기업 ?돈이 없어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희망이 없어 투자를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봐야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느냐. 돈 있는 사람을 더 부자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도 양적 완화에 대해 공식 논평으로 “새누리당의 무제한 돈 풀기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무책임한 실험이 문제가 많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게 될 것 같아 걱정”이라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실었다. 이 교수는 “양적 완화가 미국에서 효과를 본 것은 미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인 산업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적 완화가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게 될지 심각한 고민을 해봤는지 의문”이라며 “어설픈 미국 따라하기는 그렇지 않아도 쇠약한 경제에 더욱 심한 병을 안겨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른 방법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다”며 “단기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나중에 발생하는 비용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양적 완화는 제로금리 정책마저 무력화됐을 때 하는 것이며 한국판 양적 완화의 방향도 틀렸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산금채를 사주고 싶다면 산은 증자(자본금을 늘리는 것)를 하면 되지 한국은행을 동원하자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 생각하기 "서두를 필요는 없으며 버블도 유념해야"
양적 완화 纜〈?늘 수식어가 붙는다. 바로 ‘비전통적(unconventional)’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행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다. 전통적인 통화정책에서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절하거나 공개시장 조작, 재할인율 조작 등으로 간접적으로 시중 통화량을 조절한다.
하지만 양적 완화는 중앙은행이 국채나 주택저당채권 등을 정해진 한도에서 직접 무제한 매입하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기준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물가도 오르지 않자 비상수단으로 동원한 정책이다. 미국에서는 ‘돈을 헬리콥터로 뿌린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야말로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시중에 쏟아내는 식이다. 새누리
이 밝힌 양적 완화는 미국 등의 양적 완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돈을 푼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양적 완화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공방이 치열하다. 비상수단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경제에 거품만 키워 결국 더 큰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한국판 양적 완화에 대해서도 섣부른 판단은 쉽지 않다. 다만 그 시기와 관련, 아직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국 기준금리는 양적 완화를 시행 중인 국가들에 비해서는 아직 추가 인하 여력이 있다.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양적 완화가 자산버블을 가져온다는 점에서도 신중해야 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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