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벚꽃향 맡으러 진해 왔다가 옛 향기에 푹 빠졌습니다

입력 2016-04-03 16:24
10일까지 진해 군항제 개최

경화역·여좌천·드림로드…눈부신 흰 꽃잎 비처럼 내려
중국·러시아풍 근대 건축물 따라 독특한 세월의 흔적 남아


[ 최병일 기자 ]
벚꽃 피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얗고 여린 꽃잎이 비처럼 내리면 진해가 생각납니다. 예전에는 진해였지만 이제는 창원시와 합쳐진 진해의 벚꽃군항제는 축제 기간에 100만명이 넘게 찾아오는 세계적인 축제가 됐습니다.

창원시 진해구는 벚꽃으로만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근현대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축물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6·25 전쟁 직후 문을 열었다는 중국집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짜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진해우체국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죠. 100년이 넘었다는 명물과자인 ‘진해콩’이 아직도 명맥을 이어가는 진해는 도시 전체가 근대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창원 관광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진해로 떠나볼까요?


여좌동【?벚꽃놀이 하고 드림로드서 데이트

진해에 벚꽃이 만개했다. 꽃 마디마다 하얀 꽃잎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진해 도심은 온통 하얀색 물결로 굽이친다. 벚꽃은 밤이 되면 불빛을 받아 더 반짝거린다.

진해엔 벚꽃명소가 많지만 그중 경화동에 있는 간이역인 경화역은 벚꽃이 만발한 철길 위로 흩날리는 꽃잎들이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철길 따라 쭉 펼쳐진 벚나무가 터널을 이뤄 벚꽃 시즌이면 수많은 사진작가가 모여든다.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와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인 경화역에서 세화여고까지 이어지는 약 800m의 철로변 벚꽃은 여좌천보다 한가하게 벚꽃을 즐길 수 있어 연인과 가족단위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진해 벚꽃의 최고 명소는 여좌천이다. 여좌천에는 작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로망스 다리’라고 불린다. MBC 드라마 ‘로망스’에서 주연배우 조재현과 김지수가 진해 군항제를 구경 와서 처음 만난 곳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다리는 ‘로망스 다리’라는 이름을 얻었고 관광명소로 급부상했다.

진해와 창원을 잇는 안민터널 위 산으로 오르는 일명 드림로드는 내딛는 발길마다 벚꽃이 만발했다. 벚꽃 사이로 홍매화와 복사꽃이 섞여 있어 울긋불긋 꽃대궐이 차려졌다.

1912~1920년대 근대 건축물 즐비한 진해

진해에는 벚꽃 말고도 명물, 명소가 많다. 우선 1910~1920년대 세워진 근대 건축물이 즐비하다. 진해역에서 5분 거리에 군항마을 역사길이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6각형의 중국풍 누각이다. 지금은 곱창전골과 갈비탕 등을 파는 식당이 됐지만 1910년대만 해도 일본군 초소로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지붕 모양이 하늘로 솟아 ‘뾰족집’으로 불렸다고 한다.

뾰족집 건너편에는 6·25 전쟁 직후인 1956년에 문을 연 중국집 ‘원해루’가 있다. 중공군 포로 출신인 장철현 씨가 문을 연 중국음식점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장제스(蔣介石) 대만 총통이 여기를 다녀갔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도 여기서 찍었다. 최근에는 ‘수요미식회’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맛집으로 소개되면서 다시 부흥기를 맞고 있다.

진해 옛도심 한복판에는 ‘팔거리(중원로터리)’가 있다. 이름 그대로 여덟 개의 길이 만나는 로터리다. 팔거리는 광장 같은 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형 차로가 잘 정비돼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제황산 공원의 진해 탑에 올라 보면 방사형으로 정비된 옛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항간에는 일제가 로터리를 일장기 형태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당시 세계적으로 널리 도입된 동심방사형 기법을 일제가 적용했을 뿐이라는 게 정설이다.

로터리 옆에는 1912년 러시아풍으로 지은 진해우체국(사적 제291호)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제가 무기를 생산할 재료가 부족해 지붕의 동판과 난간을 모두 징발해 갔다. 아연
막?대체한 것을 1984년에 복원했다. 진해의 랜드마크로 2000년까지 우체국 업무를 봤는데 지금은 보험업무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우체국 옆에는 수령 100년이 넘는 향나무가 호위병처럼 우뚝 서 있다.

이중섭 서정주 등 유명 예술인 드나든 흑백다방

역사관에서 가까운 곳에 일본식 목조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하얀색 벽면의 2층 건물은 1912년 세워졌다고 한다. ‘Since 1955 흑백’이란 글귀가 세월을 느끼게 한다. 흰색 간판과 검은색 출입문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흑백은 진해의 유일한 클래식 다방으로, 이중섭 유치환 김춘수 서정주 등 유명 예술인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서양화가 고(故) 유택렬 화백이 1955년 문을 연 칼멘다방을 유 화백 딸인 피아니스트 유경아 씨가 지키고 있다. 흑백다방은 화차라는 영화에도 등장했다. 화차를 만든 변영주 감독이 유씨의 흑백다방에 갔다가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돼 영화 속에 넣게 된 것이다.

평일에는 흑백의 문이 잠겨 있다. 창문 사이로 다방 안을 보니 수백장의 클래식 음반과 유 화백의 그림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앉는 의자는 언제 구입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이 느껴진다. 1인용 가죽 의자는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고, 실내 공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둥근 테이블까지 반백년 가까운 물건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매주 토요일 5시에는 유경아 씨가 나와 작은 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김창근 시인은 흑백다방의 풍경을 “진해의 봄 흑백다방에 앉아/ 가버린 시대의 흑백 사진을 생각한다./빛바랜 사진첩의 낡은 음계를 딛고/그 무렵의 바람같이 오는 길손/잠시 멍한 시간의 귀퉁이를 돌다/바람벽 해묵은 아픔으로 걸렸다가/빛과 색채와 음악이 함께 과거가 되는 /그런 주술적 공간에 앉았노라면 시대를 헛돌려 온 바람개비/아무것도 떠나간 것이라곤 없구나”라고 노래했다. 길을 돌아가니 바람이 불었다. 벚꽃향기가 은은히 퍼졌다. 그위로 새하얀 벚꽃이 흩날렸다.

여행Tip
진해 군항제-불빛과 벚꽃이 어우러진 화려한 축제

제54회 진해 군항제가 오는 10일까지 창원시 진해구 전역에서 열린다. 올해에는 해군사관학교 개교 70주년과 맞물리면서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진다. 전야제와 개막 행사, 이 충무공 추모대제, 문화 공연 등이 도심의 만개한 벚꽃과 어우러진다. 여좌동 ‘로망스 다리’ 일대에는 루미나리에, 레이저쇼 등 화려한 불빛이 연출된다. 진해루에서는 ‘멀티미디어 불꽃쇼’가 펼쳐져 야간 벚꽃 투어를 하는 관광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진해 군악 의장 페스티벌’은 오는 7~10일 펼쳐진다. 8일에는 진해공설운동장 상공에서 공군 특수비행전대인 ‘블랙이글스’의 곡예비행도 볼 수 있다. 여좌천에서는 벚꽃과 빛이 어우러지는 야간 별빛축제가 열린다.

진해 맛집

요즘 도다리가 한창 살이 올랐다. 창원 ‘바다바다 횟집’ 도다리쑥국은 국물이 진하고 쑥향도 진하게 느껴진다. (055)286-2900. 마산 합포구에 있는 ‘고성 자연산횟집’ 도다리국도 맛?일품이다.(055)246-7172. 숯불 향기 가득한 석쇠구이집 ‘임진각’은 줄을 설 정도로 손님이 많다. (055)256-3535. 진해의 ‘콩과자’는 100년이나 된 명물이다. 콩가루 15%가 섞인 반죽을 콩 모양으로 떼어 불에 구운 뒤, 설탕 시럽을 입혀 만든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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