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10마리로 사업을 시작해 곡물 유통, 사료, 축산, 식탁에 오르는 육가공식품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 농업분야 대기업이 탄생했다. 올 4월 1일 기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하림그룹 얘기다.
하림그룹은 국내에서 농업기업으로는 최초로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팬오션(옛 STX팬오션)을 인수하면서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 '곡물에서 식탁까지'…팬오션 인수 승부수
지난해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하림그룹에 편입된 팬오션은 곡물 유통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팬오션은 지난해 회사 내 곡물사업실을 신설하고 미국 현지법인인 팬오션아메리카가 미국 농림부(USDA)로부터 곡물 수출허가를 받는 등 곡물 유통사업을 추진해왔다.
2000년대 원자재를 수송하며 대표적인 벌크선사로 꼽혔던 팬오션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며 어려움을 겪었다. 2013년 6월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지난해 2월 하림그룹-JKL 컨소시엄이 1조79억원에 인수했다. 같은 해 7월 회생절차를 졸업했다.
닭고기 회사로 알려진 하림이 해운사를 인수한 것은 주력 사업인 사료부문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림의 전체 매출(4조8000억원) 중 사료부문은 1조4000억원, 닭고기부문은 1조1000억원이다.
팬오션은 한때 2500만t의 곡물을 수송해 곡물 메이저를 제외하고는 상업적 곡물 수송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회사다. 항만 네트워크는 물론 곡물시장 정보력을 쥐고 있다.
곡물은 하림그룹의 주사업 영역인 닭고기·돼지고기 등 축산, 식품가공업, 사료부문과 뗄 수 없는 관계다. 2014년 하림그룹 사료회사(제일사료·팜스코·선진·하림)의 곡물수입량은 총 208만1000t으로 축산업에 필요한 사료 원료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팬오션은 올해 곡물 유통 물량 120만t 확보를 시작으로 2018년에는 340만t을 유통해 국내 사료용 곡물 시장을 석권하고, 2020년에는 아·태지역 메이저 회사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농업기업 최초 대기업 반열 올라…규제 쓰나미 돌파 '관건'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림그룹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팬오션 인수로 자산이 4조7000억원에서 9조9000억원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곡물 유통부터 우리 식탁에 오르는 최종 육가공식품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 국내 최대 농업 분야 대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국내에서 농업기업으로 대기업 반열에 오른 최초의 사례다.
하지만 앞으로 걱정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일감 몰아주기,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금지 등 새로운 규제를 받게되기 때문이다.
하림그룹은 닭고기 부분육 판매사인 올품의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야 한다. 비상장 계열사의 중요사항 공시, 대규모 내부거래에 관한 이사회 의결 및 공시 등의 의무도 생긴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58가지 지원이 중단되면서 동시에 16가지의 규제를 받고,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할 때 35개 규제가 더해진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는 기업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증후군’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독일과 네덜란드의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고 했다. 그는 "독일은 중소기업에 혜택을 주기보다는 모든 기업에 상속세를 면제해 주는 등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한다"며 "이런 환경에서 독일의 수많은 중소기업이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한 것을 보면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자유로운 생태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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