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아테네 문명 황금기도 시작은 '소통'이었다

입력 2016-03-31 19:06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340쪽 / 2만3000원


[ 고재연 기자 ]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였다. 기원전 431년에 발발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놓고 승리를 호언장담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는 차분하게 앉아 전쟁의 예상 비용을 산출했다. 첫 번째 전투에서 졌을 때 아테네 시민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연단에 올랐고, 분노한 시민의 마음을 돌렸다. 그의 연설에는 시민의 용기를 북돋워주고, 노여운 마음을 달래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힘이 있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그리스가 ‘아테네 문명의 황금기’를 맞은 건 이런 까닭이다.

《마키아벨리》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등의 저서를 통해 고전에 현대적 의미를 불어넣은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을 펴냈다. 미래가 불투명한 이 시대에 고대 그리스 고전에서 참된 지도자의 길을 찾자는 의미다.

왜 유독 고대 그리스에서 ‘군주의 거울’이 될 만한 인물이 많이 배출됐을까. 저자는 기원전 5~4세기 고대 그리스가 겪은 아포리아(aporia)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위기보다 더 심각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라는 의미로 아포리아라고 불렀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는 △페르시아 제국이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9~449)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동족상잔의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 △아테네라는 도시가 철학에 범죄를 저지른 소크라테스의 죽음(기원전 399)이었다.

저자는 “일제강점기를 경험하고, 이념의 동족상잔인 6·25전쟁을 거쳐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과 꼭 닮았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에 쓰인 책이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등이다.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등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분명하다. “어떤 나라든 조직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다 사람 때문”이라는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선 두 가지 유형의 지도자가 탄생한다. ‘진정한 군주의 거울’이라 꼽히는 페리클레스와 ‘배신의 아이콘’ 알키비아데스다. 페리클레스는 △미래를 예측하는 식견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 △재물에 초연한 마음을 가진 지도자였다. 반면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던 알키비아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분수령이 된 시칠리아 원정을 주장했다. 그저 명성을 얻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아테네 시민을 전쟁의 광풍 속으로 몰고 갔으며 시칠리아로 가던 도중 부대를 이탈, 스파르타 편에 서서 조국을 배신해 뮌?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저자는 1부에서 고대 그리스 역사에 등장한 지도자의 유형을 살펴본 다음 2부에선 크세노폰의 저서 《키루스의 교육》을 통해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크세노폰은 플라톤처럼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때로는 손에 피를 묻혀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사랑하는 부하를 읍참마속(泣斬馬謖)해야 하는 현실의 냉혹한 문제를 치밀하게 다룬다.

특히 “군주는 늘 ‘비너스 효과’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너스 효과는 거울을 보는 비너스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들에서 착안한 용어다. 비너스는 거울 속 자기 모습만 볼 수 있지만, 우리는 비너스가 보지 못하는 그녀의 뒷모습까지도 볼 수 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까지도 다른 사람들은 지켜보고 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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