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 좌동욱 기자 ]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인가.”
현대증권 매각을 자문하고 있는 EY한영회계법인 실무자들이 최근 현대그룹으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다. 막대한 자문 비용을 주고 고용한 자문사가 현대그룹이 아닌 정부와 산업은행 편에서 일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담겨 있다. 현대그룹 내부에서도 상호 불신의 싹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KB금융지주나 한국투자금융지주에 정보가 유출되고 있다는 루머가 떠돌 정도다.
지난해 일본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오릭스가 현대증권 인수를 위해 금융당국 대주주 변경 심사를 받을 당시엔 윤경은 사장과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김기범 전 KDB대우증권 사장이 4개월여간 동거하는 초유의 상황도 발생했다. 오릭스의 인수 시도가 무산되자 김 전 사장 측과 가까운 임직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현대증권 매각이 장기화하면서 생기는 부작용과 비효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핵심 인재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계약직 위주로 채워 넣다보니 과거 ‘바이코리아’로 상징되는 강력한 조직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현대증권의 CEO만 하더라도 최근 10년간 5명이 선임됐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현대증권이 지난해 거둔 성과는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현대증권이 거둔 순이익은 2796억원, 자기자본이익률(ROE)은 8.9%에 달한다. 임직원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적표다. 현대증권은 2014년 희망퇴직을 통해 전체의 16%(400명)에 달하는 인력을 내보냈다.
현대증권 매각이 막바지 단계다. 우선협상대상자가 오늘(1일) 확정된다. KB금융과 한국투자금융 모두 1조원이 넘는 파격적인 몸값을 제안했다. 현대그룹에 남은 ‘숙제’는 직원을 잘 키워줄 새로운 주인을 정하는 일이다. 경쟁을 부추겨 매각대금을 한두 푼 올려받기보다는 직원들과 조직의 미래를 다짐받는 데 총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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