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유가는 공포가 아닌 축복이다

입력 2016-03-31 11:16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정형석 기자 ] 뉴 미디오커(New Mediocre: 새로운 평범)의 시대이다. 저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의 덫에 걸린 지금의 글로벌 경제를 빗댄 용어이다. 낯설지 않다. 경제학 200년의 역사가 ‘성장의 정체’와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맬서스는 우울한 경제학의 대표주자이다.

비관의 창은 아름답다. 냉철하고 아카데믹해 보이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전망은 과학적이었지만, 처방은 잔혹했다. 빈민의 거리를 더 비좁게 만들어 전염병을 돌게 하고, 구휼이 아닌 기아로 인구를 조절하자고 제안했다. 아이러니는 그의 직업이 사업가가 아닌 성공회 목사였다는 것이다.

맬서스가 틀린 건 아니다. 식량은 산술급수로 늘고, 인구는 기하급수로 증가했다. 단, 요소 비료가 발견되기 전까지 그러했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출간된 해는 1798년이고, 영화 [Far and Away]는 아일랜드의 감자 대흉년(1845~1852년)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식량 부족이 인구 이동을 촉발했다. 아일랜드 소작농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미국의 한 축이 되었다. 미국의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도 이 때 이민 온 아이리쉬의 후예이다.

맬서스가 놓친 건, 기술혁신이다. 유럽이 식량 위기를 극복하고, 전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질소비료로 인한 식량의 대량 생산이었다. 가장 흔한 질소로, 암모니아를 얻고, 이를 가지고 비료의 원료를 만들었다. 바로 독일의 프리츠 하버(1864~1934)와 카를 보쉬(1874~1940)가 만든 하버-보쉬 공정’이라는 기술 혁신이다.

보쉬란 이름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대 차 부품회사인 [보쉬]가 바로 그 회사이다. 자율 주행과 미래차 분야에서 보쉬는 여전히 돋보인다. 프리츠 하버는 독일 과학의 상징이다. 유태임에도 1차 세계대전에는 염소독가스를, 2차 세계대전에는 유태인 대학살에 사용된 질식 독가스를 개발했다. 이 역시 역사가 주는 아이러니이다.

저유가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셰일 가스, 해저 유전 등 석유 기술의 발전이 저유가를 촉발시킨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인하 공급 증가가 이유라면, 저유가 시대를 우려가 아닌 기대의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낮은 유가는 한국에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한 구조로만 볼 이유는 없다. 석유를 수입하여, 제조 수출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상을 뛰어넘은 저유가의 충격으로 인해 한국의 해외건설과 조선 업종은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해외건설이든 조선이든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훼손된 건 아니다. 글로벌 경기가 돌아설 때, 저유가는 공포가 아닌 축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투자자들은 바로 직전 기억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비관론은 관성적인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선형적이지 않다. 맬서스가 틀렸던 것이 아니라, 이후 기술 발전이 가져올 변화를 몰랐을 뿐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저유가는 공포가 아닌 축복이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strategy@ebests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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