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라틴' 탄탄한 성장
제조업 육성·SOC 투자 활발…페루·콜롬비아 3%대 성장
국가신용등급 올라
'동부 라틴' 경제 뒷걸음
퍼주기식 복지·부정부패…원자재값 폭락·부채비율 급증
베네수엘라는 디폴트 위기
[ 박진우 기자 ]
남대서양 연안의 우루과이는 요즘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이른바 ‘동부 라틴’ 중심의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가입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회원국들의 경제가 수년간 곤두박질치면서 동반 추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어서다. 한마디로 줄을 잘못 섰다는 얘기다.
세계 8위, 중남미 1위 경제대국인 브라질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7%까지 떨어졌고, 올해도 경기 후퇴가 확실시되고 있다. 다닐로 아스토리 전 우루과이 부통령은 2014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메르코수르는 도대체 하는 게 없다”며 “새로운 경제동맹에 가입하기를 희망한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참다못한 타바레 바스케스 우루과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우루과이 대통령궁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 메르코수르와 유럽연합(EU)의 자유무 で河?FTA)을 추진하고 나섰다. 우루과이의 절박한 움직임은 중남미 경제대국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좌파 정부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멍든 ‘동부 라틴’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같은 남미 대륙에 자리 잡고 있지만 태평양 연안의 ‘서부 라틴’ 상황은 크게 다르다. 페루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등 4개국이 2012년 결성한 ‘태평양동맹’의 경제는 국제 원유 가격이 지난 2년간 3분의 1토막이 나는 등 원자재 가격이 급락한 가운데서도 탄탄하게 버티고 있다.
지난해 페루 경제성장률은 3.3%(세계은행)에 이르러 중남미 평균(-0.7%)을 크게 앞질렀다. 제조업을 키우고 보호무역을 철폐하며 능력에 맞는 복지비를 지출하면서 경제 체력을 키운 결과다.
◆페루 GDP 증가율은 중남미 최고
서부 라틴 국가들은 글로벌 경기침체의 위협에서 떨어져 있다. 콜롬비아(3.1%) 멕시코(2.5%) 칠레(2.1%) 모두 지난해 건실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올해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4~3.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태평양동맹 4개국은 모두 국가신용등급이 한 단계씩 올랐다.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정치적 안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CNN머니는 남미 최고 경제성장률을 이뤄낸 페루에 대해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과 정반대 모습”이라며 “빚도 많지 않고 부패 스캔들도 없으며 시장경제에 충실한 경제정책으로 순항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칠레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15.1%로 중남미 최저 수준이다. 페루는 20.7%로 두 번째로 낮고 콜롬비아(44.3%), 멕시코(49.7%)도 중남미 평균을 밑돈다.
서부 라틴은 기업환경 개선에도 주력했다. 지난해 9월 세계은행이 발표한 ‘2015 비즈니스하기 좋은 중남미 국가’에서 콜롬비아, 페루, 멕시코, 칠레는 각각 1위부터 4위까지를 휩쓸었다. 자금조달, 소액투자자 보호, 통상, 도산문제 해결 제도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자유무역을 확대한 것도 서부 라틴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멕시코와 페루는 각각 40개국 이상의 국가와 FTA를 체결했고 칠레와 콜롬비아는 60개국이 넘는다. 태평양동맹 4개국은 미국과 일본, 호주 등이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가입했다.
멕시코는 미국 시장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제조업 육성에 공을 들였다. 멕시코에는 포드, 크라이슬러, 제너럴모터스(GM), 아우디 등 글로벌 자동차회사의 공장이 대거 들어섰으며 한국을 능가하는 ‘완성차 대국’을 꿈꾸고 있다. 현재 멕시코의 전체 수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9%에 이른다. 원자재값 하락 충격을 견딜 체력을 갖춘 것이다. 칠레와 콜롬비아도 사회간접자본(SOC) 건설로 경기 활력을 높이고 있다.
◆한계에 부딪힌 ‘퍼주기 복지’
동부 라틴은 망해가는 나라 모임의 대명사가 됐다. 브라질은 재정이 피폐해지고 남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브라질의 사회불안은 경제 파탄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2014년 중반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40달러 안팎으로 떨어지면서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브라질 경제에서 원유 등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65%에 이른다.
재정 상태가 나빠졌음에도 브라질은 복지비용을 줄이는 데 실패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 이후 시작된 ‘퍼주기 복지’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브라질 일간지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에 따르면 브라질 재무부는 최근 연방의회에 보낸 올해 예산 수정안에서 966억헤알(약 30조원)의 기초재정수지(국채에 대한 이자 지급 제외) 적자를 예상했다. GDP 대비 1.5%에 이르는 것으로, 당초 목표인 0.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브라질 경제의 심각한 침체 국면과 정부의 고정비용 지출 증가로 재정 압박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베네수엘라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베네수엘라의 GDP 대비 원유 수출액 비중은 96%에 달한다. ‘오일머니’로 무상교육·의료 서비스를 추진하면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52%를 넘어섰다.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마저 제기되면서 지난달 자국 화폐(볼리바르)의 통화가치를 37% 끌어내리고 휘발유값을 1000% 이상 올렸지만 역부족이다.
원자재값 하락과 함께 개방 대신 보호무역을 택한 것도 동부 라틴의 경제난을 가중하고 있다. 메르코수르는 개별 국가가 메르코수르 가입국 외의 국가들과 FTA를 맺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