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흔적 찾아 떠나는 쿠바여행
낮엔 아바나 바다에 '풍덩'…저녁엔 헤밍웨이 단골 바에서 칵테일
[ 최병일 기자 ]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주자인 헤밍웨이는 멋진 이름을 가졌다. 이름에 잘 어울리는 풍모도 갖췄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모든 수식과 잘 어울리는 나라, 쿠바에서 불세출의 문학 작품들을 집필했다. 그에게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안겨준 대작 《노인과 바다》도 쿠바에서 썼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헤밍웨이를 만나기 위해 그 노인과 그 바다가 있던 곳을 찾아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아바나
소설 《노인과 바다》 표지를 보자. 가지런히 자란 수염, 오른쪽으로 빗어 넘긴 머리, 호기심 가득한 눈빛의 잘생긴 얼굴은 지성적 매력을 겸비한 마초의 전형이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얼굴을 굵은 패턴의 니트가 따뜻하게 감싼다. 마초마저 따뜻한 인상을 풍기게 하는 스타일의 니트는 ‘헤밍웨이 니트’라는 이름을 얻었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인기다.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작가의 삶은 다사다난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자신의 낚싯배를 개조해 쿠바 인근 해안에서 독일군 잠수함을 정찰하는 ‘크룩 팩토리’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전쟁 중 당한 심각한 부상과 이후 아프리카 탐험 중 경비행기 추락 사고가 두 번 있었지만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그는 네 번이나 결혼할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으며 음주와 낚시, 글쓰기를 사랑했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살아낸 모든 찰나를 주시하고 통찰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풀어 독자들에게 실제로 경험한 듯한 착각을 선사했다.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평가되지만 정작 그가 반평생을 지낸 곳은 아바나와 아바나 인근의 코히마르다. 파란만장한 삶, 글쓰기를 향한 깊은 고뇌, 고뇌를 뚫고 세상으로 나온 모든 작품을 통해 세기의 우상이 된 헤밍웨이가 아바나에 관해 말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쿠바에 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글을 썼던 세상 다른 어떤 곳만큼이나 그곳의 서늘한 이른 아침이 글쓰기에 좋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헤밍웨이의 단골 바
아바나는 아름답다. 과거로 회귀한 듯하고 이국적인 정취로 가득하다. 감각을 둘러싼 시공간 모두가 비현실적이다. 돈을 받고 사진 찍히기 위해 형형색색의 옷과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시가를 물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도, 어디에서건 멜로디 없이 울리는 리듬에 몸을 흔들고 눈을 맞추며 웃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푸른 하늘 아래로 콜로니얼, 바로크, 아르누보 양식의 오래된 건물들이 도열해 있다. 건물 사이의 작은 골목들은 언제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옛 시가지 옆으로는 신시가지가 이어진다. 이 지점에 호텔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가 있다. 두 개의 세계를 뜻하는 이 호텔에서 헤밍웨이는 세 번째 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이곳에서 두 번째 부인인 폴라, 두 아들, 처제와 머물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로비를 지나 빈티지한 철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5층 11호, 헤밍웨이의 방이다. 볕이 화사하게 드는 방 중앙에는 헤밍웨이가 쓰던 타자기가 놓여 있다. 타자기를 중심으로 벽면을 따라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 사진자료, 소품 등이 전시돼 있다.
유명한 애주가였던 헤밍웨이의 단골 바에도 꼭 들러봐야 한다. 몬테라세와 엘 플로리디타는 헤밍웨이의 자취를 쫓는 여행객으로 인산인해다. 바 몬테라세에 들어서자 7인의 악단이 연주하는 큐반 뮤직에 몸이 절로 움직였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클라베스, 마라카스, 과요 등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리듬이 흥겹다.
럼에 콜라를 섞은 칵테일 쿠바리브레를 한 잔 들이켜자, 축제의 정점을 즐기듯 신명 난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엘 플로리디타는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느낌의 바인 동시에 음식 맛 좋기로 소문난 레스토랑이다. 특히 럼 베이스의 쿠바 칵테일인 다이키리 맛이 일품인데, 이곳에 설치된 헤밍웨이의 동상과 동석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헤밍웨이는 앉은 자리에서 무려 13잔의 다이키리를 연거푸 마셨다고 한다. 엘 플로리디타를 찾아온 관광객은 대부분 헤밍웨이 동상과 나란히 앉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다. 물론 한 손엔 언제나 다이키리를 들고 있다. 상큼한 다이키리를 들고 개구진 표정의 헤밍웨이를 위해 건배! Salud!
거장이 사랑한 아름다운 마을과 집
아바나에서 헤밍웨이를 추억하는 마지막 여정은 헤밍웨이 마리나다. 과거에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정부에서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곳엔 의학 시설들이 들어섰다. 이후 관광객의 발길은 끊겼다. 인근 부촌에서 피크닉이나 낚시를 즐기러 방문하는 사람들이 전부. 해질녘 도착한 헤밍웨이 마리나에는 그를 꼭 빼닮은 남자가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고 있었다. 붉게 물드는 사위를 가르고 낚싯줄을 능숙하고 호방하게 던져 고기를 건져 올리는 모습이 마치 헤밍웨이의 현현인 듯했다. 소란하고 활기 넘치는 아바나 도심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조용하고 호젓한 풍경이다.
코히마르(Cojimar)는 아바나 인근의 어촌마을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조용하고 아담한 정취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를 닮은 어부들이 그늘에 앉아 열기를 식히는 풍경이나, 방파제에서 바다로 점프해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의 망중한은 아늑하고 평온한 어촌마을의 정취를 배가시킨다.
마을 입구에는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헤밍웨이의 흉상이 우뚝 서 있다. 흉상을 중심으로 흰 기둥이 빙 둘러서 있는데, 마치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한다. 어딘지 어설픈 노랫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 귓전을 울린다. 동네 할아버지가 방파제 어귀에서 노래를 부르고 계셨는데, 그 풍경이 마치 헤밍웨이를 위한 세레나데를 부르는 듯했다.
20년을 산 저택 핑카 비히아
여행객들이 헤밍웨이의 동상과 사진을 찍고 들르는 곳은 골목 어귀의 라 테라사(La terraza). 헤밍웨이의 단골 바와 레스토랑이었던 곳으로, 헤밍웨의의 사진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웠다. 헤밍웨이는 코히마르 언덕에 저택을 짓고 20년을 살았다. 저택의 이름은 망루 농장이라는 뜻의 핑카 비히아다. 핑카 비히아의 가장 높은 곳에 서면 푸른 바다 곁으로 펼쳐진 아바나 도심의 풍경이 한눈에 드니,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내부에는 헤밍웨이의 모든 것을 박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현재는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헤밍웨이는 핑카 비히아에서 후대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집필했다. 이 집에 사는 동안 노벨상도 받았다.
대작들의 찬란한 고향이지만 집은 낡고 허물어져 간다. 외벽도 지붕도 세월의 흔적을 거스르지 못하고 늙어가지만 집이 간직한 우아함은 여전하다. 집안 곳곳에선 그가 남긴 흔적이 정갈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별채와 본채로 나뉘는데, 본채는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창문을 통해 침실, 옷장, 식당 등 ?둘러볼 수 있다. 사냥을 취미로 즐긴 헤밍웨이는 물소, 사슴, 표범의 헌팅 트로피들로 벽을 장식했다. 장식이라기보다 샤머니즘을 신봉해 모셔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헤밍웨이의 메모·미신·분위기까지…
헤밍웨이는 남성적이고 거친 성향과는 반대로 은근히 소심한 구석도 있었다. 미신을 철석같이 믿어 행운을 기원하는 장신구와 주술품을 집안 곳곳에 두었다. 바지 주머니에는 늙은 토끼의 발과 조개껍데기, 행운의 돌 등을 넣고 다녔고 타자기에 끼워 둔 종이를 빼면 재수가 없다고 믿기도 했다.
핑카 비히아를 덮칠 듯 자란 케이폭 나무의 뿌리가 현관 타일을 뚫고 지상으로 드러나도 자르지 않았단다. 쿠바 토착신앙인 산테리아 종교에서 케이폭 나무를 신들의 집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당시 헤밍웨이의 부인인 메리가 그의 동의 없이 뿌리를 잘라내자, 노발대발하며 일꾼들을 내쫓고 뿌리 일부분은 그의 서재에 봉헌했다고 한다. 덩치 큰 마초의 귀여운 행실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핑카 비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자 가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으니, 그곳을 수호하기 위한 나름의 조치였으리라. 도서관 내부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오래된 판본, 희귀본 등으로 빼곡하다.
헤밍웨이는 읽고 있던 책 귀퉁이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책에 관한 내용도 있고 하고 싶은 일, 지출 계획, 건강 상태 등 순간순간 생각나는 일상의 상념을 모두 적었단다. 탐방객은 그가 남긴 메모들의 면면을 자세히 볼 수 없지만, 9000여 장서의 여백에 적힌 메모를 한 사람이 연구하는 데만 12년이 걸렸다고 전해진다. 실로 엄청난 사료다.
핑카 비히아의 외길을 따라 걸으면 아담하고 푸른 수영장에 닿는다. 풀 사이드의 벤치에 앉아 그곳에서 벌어진 수많은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렸다. 헤밍웨이와 동시대를 살아간 유명인사들이 모여 즐기는 파티의 활기, 마을의 늙은 어부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소재로 쓴 소설을 낭독하던 밤의 고즈넉함. 이곳에서 피어난 모든 정취는 공기 중 고스란히 스며있다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여행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쿠바 혁명 이후 헤밍웨이는 미국으로 추방됐다. 그가 쿠바에서 좋아하는 낚시를 마음껏 즐기며 살았더라면 엽총으로 자살해 생을 마감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2016년의 아바나는 당신이 있었던 그때의 활기를 찾게 될 거라고.
여행 정보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쿠바는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될 추세다. 한국에서 쿠바로 가는 직항은 없다. 캐나다, 멕시코, 일본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다. 공용어는 스페인어다. 관광지 이외에서 영어 소통은 불편한 편이므로 간단하게라도 스페인어를 알아두는 게 좋다. 화폐는 페소를 사용한다. 생활물가와 여행물가가 다르다. 여행객은 외국인 전용화폐 CUC(세우세)를 사용해야 한다. 0.
9CUC가 약 1USD. 시간은 한국보다 13시간 늦다.
아바나=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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