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인간 지배하는 '터미네이터'인가 멸종위기 인류 구하는 '타스'인가
인공지능의 두 얼굴, 인간 선택에 달렸다
매트릭스 등 디스토피아 그렸지만 전문가 "지나친 우려는 필요 없어"
결국 인간의 의지와 욕망의 문제
초인공지능, 인간 뇌부터 정복해야…엄청난 전력 먹는 에너지 문제도
[ 전설리 기자 ]
인류에게 문명의 지혜를 가르쳐 준 ‘검은 돌기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목성으로 향하던 디스커버리호. 인공지능(AI) 할(HAL 9000)은 반란을 일으켜 승무원을 하나둘 살해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작)의 내용이다. 밀폐된 우주선을 조종해 인간을 공격하는 할은 공포스럽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바둑 대결에서 2연승을 거두자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즉각적인 반응은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할 것”이란 두려움이다. 이런 공포감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터미네이터’ 등 공상과학(SF)영화의 영향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SF영화는 대체로 공통된 화두를 던진다. 인류와 인공지능의 공존 방식이다. 그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이 질문에 전문가들은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조언한다.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이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며 “이를 어떻게 쓸지는 사회가 논의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미국 과학자이자 공상과학(SF)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1950년 발간한 장편소설 《아이 로봇(I Robot)》에서 인공지능(AI) 로봇의 행동 원칙 세 가지를 제시했다.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한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등이다.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진화를 거듭한 로봇이 이 원칙을 거부한다면…. 이세돌 9단의 2연패는 이런 질문을 소환했다.
두 얼굴의 인공지능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은 선(善)과 악(惡) 두 얼굴을 가진다. 악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공격하고 지배하고자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이 대표적이다. 두 영화에서 인간은 기계(인공지능)와 전쟁을 벌인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약점을 이용해 기반시설을 모두 파괴한다. 초토화된 지구에서 인류는 처절한 투쟁을 한다.
선한 인공지능은 인류의 조력자이자 동반자로 등장한다. 영화 ‘빅 히어로’의 인공지능 로봇 ‘베이맥스’는 푹신푹신해 보이는 외모만큼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위로한다.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로봇 ‘타스’도 마찬가지다. 멸망을 앞둔 인류가 이주할 행성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목숨을 구한다. 블랙홀에 갇힌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선 그를 도와 극적으로 인류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디스토피아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이 통제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최진성 SK텔레콤 종합기술원장은 “결국 인간의 의지와 욕망의 문제”라고 말했다.
특이점 오나
작년 개봉한 영화 ‘엑스마키나’는 보다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이 진짜 인격과 감정, 즉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느냐다. 가상의 세계 최대 인터넷 포털 블루북의 프로그래머인 ‘켈럽’은 창업자이자 천재 개발자 ‘네이든’의 집에서 1주일간 머물게 된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네이든이 창조한 인공지능 ‘에이바’에 튜링 테스트를 시행하는 것. 튜링 테스트는 대화를 통해 인간인지 컴퓨터인지 판단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켈럽은 에이바와 만나 대화하고 자의식이 있는지 평가한다. 에이바는 창조적인 행위로 분류하는 그림을 그릴 뿐만 아니라 켈럽, 네이든과 치열한 두뇌 전략 게임까지 벌인다. 기존에 나온 SF 영화 속 어떤 인공지능보다 인간에 가깝다.
그렇다면 에이바와 같이 인간과 비슷한, 인간을 초월한 인공지능이 언젠가 탄 暉耐? 미국 컴퓨터 과학자이자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기술부문 이사인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2045년 컴퓨터가 인간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갖춰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될 것으로 예견했다. 이를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특이점(singularity)’으로 정의했다.
“갈 길 먼 인공지능”
과학계에선 이런 전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과 비슷한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선 인간의 뇌를 정복해야 하는데 뇌는 아직 인류에게 미제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뇌에서 자의식을 형성하는 부문조차 규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에너지도 인공지능의 발목을 붙잡는 난제다. 막대한 계산을 하기 위해선 수천개 중앙처리장치(CPU)를 써야 한다. 알파고만 해도 CPU 1202개를 병렬로 연결했다. 인간과 같이 적은 에너지로 복잡한 계산과 사고를 하는 고도의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힘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순간적인 변화에 반응하는 속도는 인간보다 훨씬 느리다. 시각 등 막대한 상황 정보를 종합적으로 인식해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두석 KIST 선임연구원은 “시속 200㎞ 속도로 달리며 도로 환경을 파악하는 무인 자동차 시대가 열리면 인공지능이 정말 인간에게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구글 무인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25마일(40㎞)이다.
■ 특이점
singularity. 미래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이 제시한 개념. 커즈와일은 2005년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2045년이면 인공지능(AI)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寬平測?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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